성 로베르투스(Robertus, 또는 로베르토)는 1028년경 프랑스 중부 샹파뉴(Champagne) 지방 트루아(Troyes) 교외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5세 때 트루아 인근 몽티에 라 셀(Montier-la-Celle)의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련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도원장이 되었다. 1070년경 트루아에서 멀지 않은 욘(Yonne) 지방의 토네르(Tonnerre)에 있는 베네딕토회 성 미카엘 수도원의 원장으로 추대되자 이를 수락하였다. 그는 수도원의 개혁을 시도했으나 이미 수도승들의 생활이 해이해졌고 개혁 의지마저 없어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의 생활을 개선할 수 없음을 깨달은 성 로베르토는 수도원장직을 사임한 후 다시 몽티에 라 셀의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1072년쯤 토네르의 성 미카엘 수도원 근처 콜랑(Collan) 숲에서 은수 생활을 하던 몇몇 은수자들은 성 로베르토에게 함께 은수 생활을 실천하자고 제안했다. 성 그레고리오 7세(Gregorius VII, 5월 25일) 교황은 로마까지 찾아온 은수자들의 청원을 수락해 1074년경 성 로베르토를 은수자들의 지도자로 임명하였다. 1075년 성 로베르토는 은수자들과 함께 몰렘에 작은 공동체를 설립하고 클뤼니(Cluny) 수도회와 관계없이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충실히 따르는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성 로베르토의 성덕과 명성 때문에 많은 지원자가 몰리고 수도원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문제도 발생했다. 많은 기부금으로 수도원이 부유해지면서 수도자들이 본분을 잊고 점점 나태한 생활에 물들어갔다. 그러자 문제 해결을 위해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더 철저히 지키자는 쪽과 극도의 청빈을 실천하며 은수 생활을 더 철저히 수행하자는 쪽으로 수도승들의 의견이 갈리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 로베르토는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과 청빈 생활을 더욱 철저히 실천하는 은수 생활을 위해 1098년 초 평소 그를 믿고 따르던 성 알베리코(Albericus, 1월 26일)와 성 스테파노 하딩(Stephanus Harding, 3월 28일) 및 20여 명의 수도승과 함께 몰렘의 수도원을 떠나 본(Beaune)의 자작(子爵)인 르노(Renaud)가 마련해 준 시토(Cteaux) 계곡에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했다. 그는 시토 수도원에서 은둔과 청빈과 검소한 생활을 하며 성 베네딕토의 규칙을 충실히 지키는 이상적인 수도 생활을 실천하고자 했다. 한편 몰렘 수도원은 성 로베르토가 수도원을 무단이탈했다고 규정하고 교황에게 중재를 요청하였다. 결국 1년 이상 시토에 머물던 성 로베르토는 1099년 교황 우르바노 2세(Urbanus II)가 교서를 통해 몰렘 수도원을 정상화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몰렘 수도원으로 되돌아가 수도승들을 지도하였다. 그렇게 그는 1111년 4월 17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몰렘 수도승들을 지도하며 수도원 정상화와 수도 생활의 개혁을 위해 헌신하였다. 성 로베르투스는 1222년 교황 호노리오 3세(Honorius 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옛 “로마 순교록”과 시토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224년 이후 4월 29일에 기록하고 기념해왔다. 1969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른 로마 보편 전례력 개정 이후에는 선종한 날인 4월 17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4월 17일 목록에서 더 단순하고 더 엄격한 수도 생활을 추구하며 시토회를 설립하고, 초대 대수도원장을 역임한 뒤에 몰렘에서 평화롭게 선종한 성 로베르토의 업적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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