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고델리바(Godeliva)는 1050년경 프랑스 북부 불로뉴(Boulogne) 근처에서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18살쯤 되었을 때 플랑드르의 영주인 히스텔(오늘날 벨기에의 서플랑드르 지역에 있는 도시)의 베르톨프(Bertolf)와 결혼했는데, 그녀의 남편은 별다른 이유 없이 아내를 멀리하고 결혼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터무니없는 모욕을 주곤 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평소 혹독하게 대했던 시어머니에게 맡겼는데, 시어머니는 그녀를 이웃 농장으로 보내 고된 노동에 먹을 것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는 처지로 내몰았다. 그녀는 간신히 탈출해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그녀의 부친과 그 지방 주교의 압력에 굴복한 남편은 아내에게 돌아가 잘 대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남편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해를 가장하고 있다가 다른 사람의 의심을 피하려고 브뤼헤(Bruges)를 여행하는 동안 그의 명령을 받은 두 명의 하인이 목을 졸라 성녀 고델리바를 살해하고 자연사를 가장하려고 우물에 던지는 만행을 저질렀다. 베르톨프는 유죄판결을 모면하고 즉시 다른 여인과 재혼을 했다. 하지만 그 지역 사람들의 분노와 그녀에게 전구를 청해 기적이 일어나면서 플랑드르 지역에서 그녀를 순교 성인으로 공경하기 시작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던 베르톨프는 두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눈먼 딸이 성녀 고델리바에게 기도하여 시력을 회복하는 기적을 경험한 후 비로소 회개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베르그생위녹(Bergues Saint-Winoc)의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들어가 참회하며 여생을 보냈다. 1084년에 투르네(Tournai) 교구의 주교는 그녀의 시신을 히스텔 성당에 안장하도록 했고, 그녀의 무덤은 곧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순례자들은 그녀가 던져졌던 우물의 물을 먹으면 치유의 은혜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성녀 고델리바는 아무런 죄 없이 고난받는 사람의 상징으로 플랑드르 지방에서 일찍이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았다. 하지만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녀가 살해된 날도 확실하지 않아 7월 6일 또는 7월 30일에 축일을 기념했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30일 목록에서 오늘날 벨기에 영토인 플랑드르 지방 히스텔에서 성녀 고델리바 순교자가 그 지역 영주와 결혼하여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다 두 명의 하인에게 목이 졸려 살해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성녀 고델리바는 고델레바(Godeleva), 고델리브(Godelieve), 고델리나(Godelina)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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