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리카르두스 그윈(Richardus Gwyn, 또는 리카르도 그윈)은 1537년경 영국 웨일스 지방의 몽고메리셔(Montgomeryshire)에서 태어나 프로테스탄트 신자로 성장했다. 그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는 20살에 옥스퍼드(Oxford) 대학에서 잠시 공부한 뒤에 케임브리지(Cambridge)의 성 요한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1562년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렉섬(Wrexham)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개인적으로 공부를 이어갔다. 그리고 캐서린(Catherine)과 결혼해서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는 우연히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부터 고향을 떠났으나 1579년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는 다행히 탈옥에 성공해 1년 반 정도를 도망자 신분으로 살았으나 다시 체포되어 4년 동안 감옥을 전전했다. 결국 그는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1584년 10월 15일 렉섬에서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리카르도 그윈은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한 날인 10월 17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한편 웨일스 지방에서는 5월 4일 외에도 기존의 10월 25일을 ‘웨일스의 6위 순교성인’을 기념하는 별도의 축일로 유지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0월 17일 목록에서 한 가족의 아버지이자 학교 교사였던 성 리카르도 그윈이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고 다른 사람에게 가톨릭 신앙을 갖도록 설득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오랜 감옥 생활 끝에 영국 웨일스의 렉섬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