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르가리타 워드(Margarita Ward)는 1550년대에 영국 잉글랜드 체셔(Cheshire)의 콩글턴(Congleton)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런던에서 상류사회의 부인으로 살고 있었는데, 브라이드웰(Bridewell) 감옥에 갇힌 리차드 왓슨(Richard Watson) 신부가 심각한 학대를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를 방문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그녀가 처음 방문할 때는 철저한 수색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느슨해지자 감옥 안으로 밧줄을 몰래 들여갔다. 그녀의 도움으로 리차드 왓슨 신부는 탈출할 수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창문에는 밧줄이 그대로 매달려 있게 되었다. 성녀 마르가리타 워드는 신부의 탈출을 도와주기로 약속한 뱃사공과 만났지만, 그는 그녀와의 약속을 거부했다. 그래서 다른 뱃사공인 복자 요한 로체(Joannes Roche)에게 사정을 털어놓자 그는 기꺼이 그녀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복자 요한 로체는 배를 제공하고 신부와 옷을 바꿔입었다. 리차드 왓슨 신부는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지만 복자 요한 로체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말았다. 그리고 리차드 왓슨 신부의 유일한 방문자였던 성녀 마르가리타 워드 역시 체포되었다. 성녀 마르가리타 워드와 복자 요한 로체는 감옥에 갇혀 여러 날 동안 채찍질과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끝까지 사제가 도망간 은신처를 말하지 않았다. 성녀 마르가리타 워드는 재판에서 리차드 왓슨 신부의 탈출을 도와준 것을 인정하고, ‘피투성이 늑대의 손에서 무죄한 양을 구한 것에 대해 기뻐한다’라고 말했다. 성녀 마르가리타 워드와 복자 요한 로체는 한 번만이라도 프로테스탄트 예배에 참석하면 용서하고 풀어준다는 요구를 거부하고, 1588년 8월 30일 런던의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날 그들 외에도 복자 리카르도 리(Richardus Leigh) 신부와 복자 에드워드 셸리(Edward Shelley), 복자 리카르도 마틴(Richardus Martin), 복자 리카르도 로이드(Richardus Lloyd)도 함께 그 자리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녀 마르가리타 워드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한 날인 8월 30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30일 목록에서 영국 런던의 타이번에서 성녀 마르가리타 워드가 가톨릭 사제를 도왔다는 이유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때 교수형으로 순교했는데, 이날 같은 곳에서 가톨릭 신부라는 이유로 복자 리카르도 리와 사제에게 환대를 베풀었다는 이유로 평신도 영국인인 복자 에드워드 셸리와 복자 리카르도 마틴, 아일랜드인인 복자 요한 로체, 웨일스인인 복자 리카르도 로이드가 함께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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