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요한네스 로체스터(Joannes Rochester, 또는 요한 로체스터)는 잉글랜드 동부 에식스(Essex)의 털링(Terling)에서 태어났다. 그는 카르투지오회에 입회하여 런던(London)의 차터하우스(charterhouse, 수도원)에서 수도승이 되었다. 1534년 국왕 헨리 8세(Henry VIII)가 ‘수장령’(Act of Supremacy)을 공포한 이후 카르투지오회는 영국 교회의 최고 수위권이 국왕에게 있음을 서약하도록 강요받았다. 이에 항의하다가 당시 런던 수도원의 원장인 성 요한 후톤(Joannes Houghton)과 보베일(Beauvale) 수도원의 원장인 성 로베르토 로렌스(Robertus Lawrence)와 악솔름(Axholme) 수도원의 원장인 성 아우구스티노 웹스터(Augustine Webster) 신부가 1535년 5월 4일 타이번(Tyburn)에서 순교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수장령에 반대하던 네 명이 수도승이 더 체포되어 둘은 노팅엄셔(Nottinghamshire)의 보베일에 있는 수도원으로, 복자 야고보 월워스와 동료 수도승인 복자 요한 로체스터(Joannes Rochester)는 요크셔(Yorkshire)의 헐(Hull)에 있는 성 미카엘 카르투지오회 수도원으로 강제 추방되었다. 1536년 10월과 1537년 2월 사이에 왕의 수장령과 국교화에 반대하는 국민의 봉기가 ‘은총의 순례’(Pilgrimage of Grace)라는 이름으로 잉글랜드 북부의 여러 도시에서 일어났다. 특히 링컨셔(Lincolnshire)와 요크셔가 봉기의 중심이 되자 정부는 이를 해결하고 국민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고자 했다. 런던에서 요크셔의 헐로 추방되었던 복자 야고보 월워스와 복자 요한 로체스터는 노퍽(Norfolk)의 공작인 북부 책임자 앞으로 끌려가 수장령을 거부한 반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1537년 5월 11일 두 수도승은 그 도시의 시민들에게 위협적인 광경을 보여주고자 한 당국에 의해 교수형을 당한 후 그 시신마저도 성곽의 흉벽에 매달려 극형으로 처형되었다. 체포에서 순교까지 모든 여정을 함께한 복자 요한 로체스터와 복자 야고보 월워스 신부는 1886년 12월 29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5월 11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그들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5월 11일 목록에서 카르투지오회의 차터하우스에서 생활하던 복자 요한 로체스터와 복자 야고보 월워스 신부가 가톨릭교회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헨리 8세 치하에서 죽을 때까지 요크의 성곽 흉벽에 쇠사슬로 매달려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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