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페드로 에스케다 라미레스는 1887년 4월 29일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Jalisco) 주(州)의 산 후안 데 로스 라고스(San Juan de los Lagos)에서 태어났다. 그는 산 후안 데 로스 라고스 교구의 보좌신부로서 열정을 가지고 어린이들의 교리교육을 위한 직무에 헌신하였다. 그는 교리 교사들의 연구를 위한 여러 센터를 설립했다. 늘 성체성사에 대한 깊은 신심을 가졌던 그는 박해 기간에도 은밀히 가정집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 앞에서 지속적으로 조배하는 모임들을 조직하였다. 가톨릭교회에 대한 멕시코 정부의 박해가 극심하던 때 그는 체포되었고, 그 과정에서 군인들의 폭행으로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를 때린 한 군인이 이제는 아마도 사제가 된 것을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당당히 대답했다.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잠시나마 나는 천국을 보았다.” 1927년 11월 22일, 그는 처형을 위해 감옥 밖으로 끌려 나왔다. 많은 어린이가 그의 곁에 모여들었고, 자신의 옆에서 함께 걸어가던 한 소년에게 그는 끊임없이 반복해서 말했다. “절대 교리 공부를 멈추지 마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작은 종잇조각에 교리 교사들에게 주는 자신의 마지막 권고를 적어주었다. 그는 할리스코의 테오칼티틀란(Teocaltitlann) 변두리에 이르러 세 발의 총알을 맞고 순교하였다. 성 페드로 에스케다 라미레스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Christophorus Magallanes) 사제와 24명의 동료 순교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로마 보편 전례력 안에서 그들의 기념일은 시성식이 거행된 5월 21일로 결정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그들이 각각 순교한 날 목록에서 순교 사실을 전해주고, 5월 21일 목록에서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이 멕시코의 여러 지역에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그리스도 왕을 고백하고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고 기록하였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같은 날 시성식에서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멕시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Maria de Jesus Sacramentado, 7월 30일) 수녀를 성인품에 올려 모두 27위의 멕시코인 성인이 탄생했다.♣
|
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
2 | [페드로 에스케다 ...] | 성 크리스토발 마가야네스 하라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 25명 ... | 주호식 | 2012/10/30 | 163 | 0 |
1 | [페드로 에스케다 ...]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식 강론(영문) | 주호식 | 2012/10/30 | 46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