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권희 바르바라는 원래 어느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결혼 후에 남편과 함께 천주교에 입교하여 수계생활을 하였다. 바르바라는 순교자 이광헌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아내이며 순교자 이광렬 요한(Joannes)의 형수이고, 순교자 이 아가타(Agatha)의 어머니이다. 한 마디로 권희 가족은 한국의 대표적인 ‘순교일가’이다. 그녀는 남편을 도와서 앵베르 주교 및 신부들을 자기 집에 모셔 와서 신자들을 모아 미사에 참여케 하고, 강론을 듣게 하며, 성사를 받도록 배려했던 것이다. 1839년 4월 7일 그녀는 남편과 시어머니 그리고 8세된 아들과 17세 된 딸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갔다. 그녀는 배교를 강요하는 수많은 형벌을 받았으나, 가장 괴로웠던 고문은 어린 자녀들이 한없는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이었다. 형조에서는 어린이들을 형조에서 신문하는 것이 법률에 허락되지 않는다는 구실로 바르바라의 자녀를 전에 있던 옥으로 돌려 보내내, 이 어린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부모들과 헤어져 있지 않게 하여 달라고 울부짖었던 것이다. 형리들은 이 어린이들을 이용하여 바르바라의 배교를 강요하였으나, 바르바라는 뼈를 깎는 아픔을 앓으면서도 끝까지 항구했던 것이다. 다행히 포청에서 80세 된 시어머니와 8세의 아들을 풀어주었으나, 그의 딸 이 아가타가 끝까지 남아 태장 300대 이상과 대곤 90대를 맞았고, 주림과 목마름과 추위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렇게 고통의 나날을 4개월 넘게 지내다가, 마침내 다른 신자 5명과 함께 1839년 9월 3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당하여 순교하니, 이때 그녀의 나이는 46세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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