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alis)에 따르면 성 피우스(또는 비오)는 루피누스(Rufinus)의 아들로 이탈리아 북동부 프리울리(Friuli) 지방 아퀼레이아(Aquileia)에서 태어났다. 교회사가인 카이사레아(Caesarea)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그의 교황직 재위 기간을 140~155년으로 보았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신약성경의 정경 목록으로 2세기 말 로마에서 저술된 “무라토리 정경”(Canon Muratorianus)에 의하면 성 비오는 회심(悔心)을 권하는 환시적 책인 “헤르마스의 목자”(Shepherd of Hermas)를 저술한 로마의 성 헤르마스(5월 9일)의 형제로 본래 노예였다가 해방되었다고 한다. 그는 142년경에 교황 성 히지노(Hyginus, 1월 11일)를 계승하여 교황좌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재임하는 동안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의 대표자인 발렌티누스(Valentinus)와 구약성경을 인정하지 않는 마르키온(Marcion)의 이단적 가르침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정통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사제들의 회의를 열어 그들을 모두 단죄하였다. 그 외에 교황 성 비오 1세의 재임 중 활동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9세기 비엔(Vienne)의 주교인 성 아도(Ado, 12월 16일)가 쓴 “순교록”(Martyrologium)에서 그가 순교자로 처음 언급되었고, 옛 “로마 순교록”도 로마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161~180년 재위)의 박해로 순교의 월계관을 쓴 교황이자 순교자로 그를 소개하였다. 하지만 그가 순교했다는 근거는 없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11일 목록에서 “목자”라는 작품의 저자인 성 헤르마스의 형제이자 15년 동안 선한 목자로서 교회를 수호했던 교황 성 비오 1세를 로마에서 기념한다고 기록하면서 그의 순교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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