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세라피온은 교회사학자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증언에 따르면 191년 막시무스(Maximus) 주교를 계승하여 시리아 안티오키아(오늘날 튀르키예 남부 지중해 연안의 안타키아[Antakya])의 제8대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교리에 대한 학식이 매우 뛰어난 주교로서 신학 저술로도 유명했다. 에우세비우스는 그의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에서 성 세라피온의 세 가지 작품을 언급했는데, 아마도 더 많은 작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첫 번째 작품은 2세기 후반 몬타누스(Montanus)에 의해 프리지아(Phrygia)에서 발생한 종말론적 이단 운동인 몬타누스주의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아 카리쿠스(Caricus)와 폰티우스(Pontius)에 보낸 사적인 편지이다. 두 번째 작품은 박해 시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버리고 유대교로 개종한 돔니누스(Domninus)에게 보낸 글이다. 그리고 세 번째 작품은 소위 ‘베드로 복음’(Evangelium Petri)이라는 영지주의적 위경에 관해 쓴 편지이다. 당시 성경의 정경화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시리아의 로소스(Rhossos) 공동체가 전례에서 ‘베드로 복음’을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그 내용을 자세히 모른 채 신자들에게 읽어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이단적인 내용을 발견하자 즉시 사용을 금지하고 그에 대한 비판의 글을 로소스 교회에 보냈다. ‘베드로 복음’ 안에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 육신의 실재를 부정하는 그리스도 가현론(假現論, Docetismus) 이단의 주장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통교리의 수호자였던 성 세라피온은 211년경 선종했고, 성 아스클레피아데스(Asclepiades)가 그를 계승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10월 30일 목록에서 학식과 교리로 유명하고 성덕이 출중한 안티오키아의 성 세라피온 주교에 대해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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