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유정률 베드로(Petrus)는 평안도 윤리면 논재골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되었는데, 호구지책으로 짚신을 삼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또 어쩌다가 돈이 조금 생기면 노름판에 뛰어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는 이덕표라는 친척의 권유로 천주교를 알게 되었고, 그 후 교리를 배워 서울에 있던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로부터 1864년경에 영세 입교하였다. 그는 순교할 때까지 극히 짧은 신앙생활을 했지만 그 열심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세례를 받은 후에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발견하였노라” 하며 자신의 기쁨을 큰소리로 표현했다. 그러나 원래 성격이 급했던 그는 자기 아내가 고집을 부리고 대들면 참지 못하여 부부 싸움을 하고 또 다투다가 아내를 때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가 영세한 뒤로는 아내 때리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짚신처럼 생긴 나무토막을 가지고 자기 몸을 사정없이 때리고 때로는 피를 흘려가면서 자문자답하기를 “너 아프지? 제가 아프면 또한 네가 때리는 남도 아플 것이 아니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므로 옆에 있는 부인도 크게 달라진 남편을 보고 감화를 받아 마침내 착하고 상냥한 아내가 되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유 베드로의 마음속에 점차 신앙의 열이 더해감에 따라 많은 이들을 교회로 이끌어 영세 입교시켰다. 1866년 초 그는 친척집을 찾아다니면서 “평안히 계십시오. … 오늘 가면 언제 다시 뵐지 모르겠습니다. …” 하는 밑도 끝도 없는 고별인사를 하여 듣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날 저녁 무렵에 그는 공소가 있는 고둔리라는 마을로 가서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새해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날 밤에는 유달리 교우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에 회장이 복음을 읽고 강론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교우들은 당연한 듯 조용히 체포되었으나, 마침 그날이 설날이었으므로 포졸들에게 술을 대접하는 틈을 이용하여 많은 신자가 피신하고 유 베드로와 몇 명의 신자들만 남아 포졸들에게 잡혔다. 포졸들과 먼 길을 가는 동안 유 베드로는 “오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주 예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도다.” 하며 마냥 즐거워하면서 평양 감영으로 끌려갔다. 이윽고 문초가 시작되자 신자들은 한결같이 신앙을 고백하였으나, 심한 곤장을 맞고는 4명이 배교하고 유 베드로와 정 회장만이 남았다. 또 그 얼마 후 정 회장도 친구들과 배교자들을 따라 가니 결국 유 베드로 혼자 남게 되었다. 그러자 화가 치민 감사는 배교자들을 불러 들여 곤장을 주면서 유 베드로를 쳐 죽이라고 명을 내리니, 배교자들은 제 목숨을 건지기 위해 유 베드로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유 베드로는 자기를 때리는 동료들에게 “살이 살을 잡아먹는구나.” 하면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 후 배교자들은 감사의 명에 따라 그의 시신을 대동강에 버렸는데, 얼마 후 붉은 피가 물 위로 번져 나갔고, 신기하게도 그의 시체는 가라앉지 않고 언제까지나 둥둥 떠 있었으며, 매 맞은 자리는 이상한 광채가 나며 빛났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때가 1866년 2월 17일이며, 그의 나이는 30세였다. 그는 1968년 10월 6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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