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자카리아스(Zacharias, 또는 자카리아, 즈카르야)는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alis)에 따르면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의 산타 세베리나(Santa Severina)에서 그리스계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교황 이전의 그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다만 그는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로마 교회의 부제였으며, 학덕과 성덕이 뛰어난 인물로 교황 성 그레고리오 3세(Gregorius III, 12월 10일)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732년 로마 시노드의 교령에 공동으로 서명하기도 했다. 741년 11월 28일 교황 성 그레고리오 3세가 선종한 후 성 자카리아가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어 12월 3일 착좌식을 거행하였다. 교황으로 재임하는 동안 그는 성직자들과 로마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많은 자선 활동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복잡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썼다. 그는 롬바르디아(Lombardia), 프랑크 왕국, 동로마 제국과 평화로운 외교 관계를 조성하고자 노력하며 뛰어난 수완을 보여주었다. 또한 성 보니파시오(Bonifatius, 6월 5일)를 격려하여 독일 선교에 박차를 가하도록 이끄는 동시에 그를 마인츠(Mainz)의 대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피핀 3세(Pepin the Short)를 프랑크 왕국의 국왕으로 인정하여 선교활동에 큰 도움을 받았다. 그는 성상 파괴주의자들을 피하여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온 수도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였고, 수많은 노예를 해방하는 등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으며,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I, 9월 3일)의 “대화집”(Dialogues)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다. 교황 성 자카리아는 11년간의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교황권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와 성직자의 윤리를 쇄신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스 출신으로는 마지막 교황이었던 성 자카리아는 752년 3월 15일 선종하여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15일 목록에서 로마에서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하느님의 교회를 돌보고 여러 공로로 유명한 교황 성 자카리아가 평화롭게 잠들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로마에서 성 자카리아 교황이 롬바르드족의 침략을 억제하며 프랑크족에게 올바른 정부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고, 게르만족에게 교회를 제공하고 동방 교회와의 강력한 연합을 유지하는 등 하느님의 교회를 최대한 현명하고 신중하게 사목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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