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테오도시아는 289년 레바논 남부의 항구도시인 티레에서 태어났다.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305~311년 재위) 치하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성 아피아노(Apphianus, 4월 2일)가 306년경에 순교한 것을 비롯해 많은 그리스도인이 박해를 받았다. 유명한 교회사학자로 당시 카이사레아에 살고 있었던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그의 저서 “팔레스티나의 순교자들”(De martyribus Palestinae)에서 303년부터 310년까지 지속된 박해에 대해 전해주며 성녀 테오도시아를 포함해 많은 순교자에 대해서 전해주었다. 그에 따르면 307년 부활절에 18살이 된 성녀 테오도시아가 카이사레아로 와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고 체포되어 죽음을 앞둔 죄수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위로하였다. 그녀는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니 그분을 잊지 말라며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순교의 순간에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용감하고도 공개적인 행동은 박해자의 주목을 받아 결국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우르바누스 총독 앞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고 가슴을 도려내는 등 잔혹한 형벌이 이어졌다. 총독은 신전에 희생제물을 바치고 목숨을 건지라고 회유하기도 했지만, 성녀 테오도시아는 하느님을 위해 순교자들의 고통에 동참함을 기뻐하며 단호히 거부하였다. 이에 분노한 총독은 결국 그녀를 바다에 던지라고 명령하였다. 에우세비우스는 총독의 분노가 어린 소녀에게 집중하면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고문도 받지 않고 구리 광산에서 노예로 일하는 형벌을 받았다고 적었다. 그녀는 307년 4월 2일 순교의 영광에 참여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2일 목록에서 티레의 동정녀인 성녀 테오도시아가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레아로 와서 재판을 받는 그리스도인들 앞에 공개적으로 나서 그들을 위로하고 하느님과 함께할 때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부탁하다가 체포되어 총독의 명령으로 잔혹한 고문을 받고 바다에 던져졌다고 기록하였다. 성녀 테오도시아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둘러싼 열주 위에 세워진 140명의 성인 입상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성녀 테오도라(Theodora)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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