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회원인 성 프란치스코 솔라노(Franciscus Solano, 또는 프란체스코)는 에스파냐의 안달루시아(Andalusia)에서 태어났으며 1589년에 남아메리카 중부 페루(Peru)의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가 타고 가던 배가 폭풍우를 만나 포기해야 했지만 그는 몇몇 흑인 노예들과 함께 끝까지 배를 지키려고 하였는데, 결국에는 그 노예들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지는 경험을 하였다. 그는 남아메리카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인디언들 가운데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그는 다른 어떤 유럽 성직자와는 달리 각 지방의 토착 언어를 열심히 배웠고, 또한 언어의 특은을 입은 사람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604년 그는 리마(Lima)의 어느 시장에서 그 도시의 부패상을 폭로하는 설교를 하였는데, 그 설교가 너무나 강력하였기 때문에 주민들이 크게 동요하였다. 시 당국은 그 지방의 대주교에게 공식 항의하였고, 그는 군중들을 진정시켜야만 하였다. 그는 죽을 때까지 거의 20년 동안 인디언과 에스파냐 정복자 사이를 오가며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여 훌륭한 수도자의 상을 후손들에게 남겨 주었다. 1610년 7월 14일 페루의 리마에서 선종한 그는 1675년 6월 20일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726년 12월 27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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