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에 따르면 성 아분디우스(또는 아분디오)는 5세기 초 그리스의 테살로니카(Thessalonica)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 아만시오(Amantius, 4월 8일) 주교가 449년에 선종하자 그를 계승하여 이탈리아 북부 코모의 네 번째 주교가 되었다. 5세기에 교회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신성(神性)은 남았으나 인성(人性)이 사라졌기에 성모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 Theotokos)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네스토리우스 이단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되었으나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2세의 지지를 받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에우티케스(Eutyches) 대수도원장이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인 신성과 인성이 하나의 위격으로 존재함을 부인하는 그리스도 단성론(單性論)을 주장하면서 혼란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서 450년 여름 교황 성 대 레오 1세(Leo I, 11월 10일)는 에우티케스로 인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황제에게 교황의 편지를 전할 사절단을 구성했는데, 그 특사 대표로 뽑힌 이가 성 아분디오 주교였다. 그는 밀라노(Milano)의 사제로 높은 성덕과 학덕을 지닌 성 세나토르(Senator, 5월 29일)를 사절단의 일원으로 동행하게 하였다. 교황 특사로서 성 아분디오의 주 임무는 교황의 편지를 동로마 제국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2세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그가 전할 편지의 목적은 에우티케스를 지원하는 황제의 자제를 요청하고, 정통교리를 지키기 위해 에우티케스를 단죄하고 사제직을 박탈하여 황제 측근의 미움을 받아 주교좌에서 강제로 쫓겨나 리디아(Lydia)의 감옥에서 숨을 거둔 성 플라비아노(Flavianus, 2월 17일) 총대주교의 후계자로 선출된 성 아나톨리오(Anatolius, 7월 3일)의 정통성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성 아분디오와 사절단 일행이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을 때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는 이미 승마 사고로 사망한 뒤였다. 그들은 전임 황제의 사망으로 큰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후임 마르키아누스 황제의 영접을 받고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여 정통교리를 선포할 칼케돈 공의회(Council of Chalcedon, 451년 10월 8일 ~ 11월 1일)의 소집에 이바지하였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맡은 바 임무를 마치고 451년 로마(Roma)로 돌아온 성 아분디오는 교황 성 대 레오 1세의 환영을 받았고, 계속해서 밀라노로 가서 그곳의 주교인 에우세비우스(Eusebius)와 고위 성직자들에게 콘스탄티노플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정통교리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전하라는 교황의 사명을 수행하였다. 그 후 그는 자신의 교구를 돌보는 일에 헌신하다가 468년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1095년 교황 복자 우르바노 2세(Urbanus II, 7월 29일)에 의해 그의 이름으로 봉헌된 코모의 성 아분디오 성당 제단 아래 안치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2일 목록에서 교황 성 대 레오 1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플로 파견되어 올바른 신앙을 열심히 옹호한 성 아분디오 주교를 코모에서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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