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툉의 주교로서 애덕 실천이 비범했다는 사실 외에는 성 심플리키우스(또는 심플리치오)의 생애가 구름에 가려져 있다. 아마도 그는 390년경에 에제모니우스 주교를 계승하여 오툉의 주교좌에 착좌한 듯 보인다. 그는 프랑스계 로마의 귀족으로서 한때 결혼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주교로 선출된 뒤에도 아내와 한 지붕 밑에서 살았기 때문에 좋지 못한 스캔들이 많았으므로, 그들은 불의 시련을 받음으로써 나쁜 스캔들을 종식시키기로 합의하였다. 그들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붉은 석탄불을 피워놓고 그 위에 서 있었다. 이때 그 불이 그들을 조금도 상하게 하지 않음으로써 결백이 입증되었고, 따라서 수많은 외교인들이 개종하는 큰 결과를 얻었다. 이 기적은 이교도들의 큰 축제일인 ‘베레신시아’ 날에 있었기에 더욱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이에 힘을 얻은 심플리키우스는 그 지방의 거의 모든 이교 신상을 제거하는데 성공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