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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비아노(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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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플라비아노 (Flavian)
축일 2월 1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총대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활동연도 +449년
같은이름 플라비아누스, 플라비안
성인 기본정보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또는 플라비아노)는 콘스탄티노플의 사제로 교구의 재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 이전의 그의 출신과 경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는 446년에 성 프로클로(Proclus, 10월 24일)를 계승하여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승품되었다. 그런데 취임 초에 그는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408~450년 재위)의 대관식에 특별한 선물을 보내라는 환관 크리사피우스(Chrysaphius)의 제안을 거부해 큰 공경에 빠진 적이 있었다. 게다가 448년에 교회 회의를 소집해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인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하나의 위격(位格)으로 존재함을 부인하는 그리스도 단성론(單性論)을 주장하던 에우티케스(Eutyches) 대수도원장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단죄하고 그의 사제직을 박탈했다. 에우티케스는 환관 크리사피우스의 대부였고,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2세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결정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에우티케스는 이런 결정에 불복해 로마(Roma)에 상소했으나 교황 성 대 레오 1세(Leo I, 11월 10일)는 정통교리를 고수하고자 노력한 성 플라비아노 총대주교의 용기를 격찬하는 장문의 친서(Tomus ad Flavianum)를 보냈다. 이 교리 서한은 “레오의 친서”(Tome of Leo)라는 이름으로 전해오는 유명한 문서로 그리스도론에 대한 단성설 이단 논쟁이 있을 때마다 판단 기준으로 제시되었었다.

   황제 측은 이에 분개하여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총대주교인 디오스코루스 1세(Dioscorus I) 주도로 449년에 에페수스(Ephesus) 공의회를 소집했지만, 교황은 이를 ‘군도 공의회’(Robber Council)로 규정하였다. 하지만 황제의 측근들은 에우티케스의 주장을 교리로 선포하고 성 플라비아노를 강제로 주교좌에서 끌어내리고 유배형에 처했다. 결국 성 플라비아노는 리디아(Lydia, 소아시아 아나톨리아 지방의 역사적 지역으로 오늘날 튀르키예의 서부 지역)의 히파에파(Hypaepa)로 끌려가 심한 매질을 당한 후 감옥에 갇혔다가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순교자로도 불린다. 가톨릭 정통신앙을 옹호하다가 디오스코루스 추종자들과 황제의 군사들에게 심한 구타와 고문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감옥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450년에 에우티케스를 지지하던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사망하고, 451년에 개최된 칼케돈(Chalcedon) 공의회는 에우티케스를 단죄하고 성 레오 교황의 친서를 확인하며, 성 플라비아노를 성인이자 순교자로 선포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2월 18일 목록에서 그에 대해 전해주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17일로 옮겨 에페수스에서 가톨릭 신앙을 수호했다는 이유로 디오스코루스 추종자들에게 매를 맞고 추방된 성 플라비아노 주교가 3일 만에 목숨을 잃었다고 기록하였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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