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도비쿠스 알레망(Ludovicus Allemard, 또는 루도비코 알레망)은 14세기 말 프랑스 벨리(Belley) 교구의 아르뱅(Arbent)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비뇽(Avignon)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1409년에는 삼촌을 따라 피사(Pisa) 시노드에 참석하여 서방의 대이교 논쟁에 말려들게 되었다. 그는 새 교황으로 선출된 마르티누스 5세(Martinus V)를 지지함으로써 대이교의 막을 내리게 하는데 기여한 공로로 1418년에 마귈론(Maguelonne)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1423년에는 아를 교구의 대주교로 또 1426년에는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또 한 차례의 격동기를 맞아 로마(Rome)에서 감금되기도 했지만 과감히 탈출하여 아를 교구로 돌아왔다. 그의 시대는 한마디로 교회가 영혼 구원보다 외적인 여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잘 보여주던 때였다. 그는 내적으로 아무리 거룩하더라도 교회의 외부 일에 휘말리면 어쩔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는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가능하면 통회자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1450년 9월 16일 루도비쿠스 알레망이 선종한 후 그의 무덤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보고되었다. 1527년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VII)는 그를 복자로 공경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그는 루이스 알레만(Louis Aleman)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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