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성가집' 출판의 문제점 (2-2)
미국 주교회의의 문헌 중 Music in Catholic Worship 30-38항에서는 전례 때에 사용할 수 있는 성가의 선택을 위한 두 번째의 기준으로 전례적인 판단을 제시하고 있다. 하느님 백성의 공적 기도인 전례는 그 본성 상 음악을 요구하며 이 음악은 바로 전례 행위에 봉사하기 위해 있다는 관점에서 음악 작품을 살펴보는 것이다. 전례에 필요한 음악을 작곡할 때 단순히 음악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은 어쩌면 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전례 음악에 사용되는 음악이 그 품위에 있어서나 음악적인 완성도에 있어서 가능한 한 훌륭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전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례에 사용되는 음악을 작곡하고, 이런 음악을 전례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음악적인 완성도나 미적 아름다움만을 평가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더 이상의 것이 요구되는데 즉 미사 전체를 이루고 있는 여러 예식들의 구조가 요구하는 음악의 기능과 형태를 생각하는 전례적인 판단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음악가는 음악을 작곡하거나, 연주하고, 또 미사를 위한 성가를 선곡할 때에 다음의 사항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 전례의 어떤 부분이 반드시 음악을 필요로 하는가?
- 이 음악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가?
- 이 음악이 공동체의 기도를 도와줄 것인가? 아니면 방해할 것인가?
- 전례 행위를 수반하는 이 음악이 그 행위를 강화시켜 줄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이
노래가 그런 행위를 애매하게 만들어 버릴 것인가?
1. 미사의 구조와 음악
이런 전례적인 판단을 위해서 먼저 교회음악가들은 전례 신학 특히 미사 전체 구조에 익숙하여야 함은 말할 것도 없고 미사의 각 부분들이 전체 안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미사의 구조는 존중되어야할 예배의 어떤 리듬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흐르는 강물과도 같이 전례의 흐름은 전체로서의 연결성은 가지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부분도 있고 천천히 진행되는 부분도 있으며 심오한 부분도 있으며 약간은 덜 중요한 부분도 있다. 아무리 미사가 전체로 보아 하나의 예식이라 하더라도 이를 구성하는 그 안의 여러 예식들 모두가 똑 같은 중요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교회음악가들이 이런 관점에 신경을 쓰면서 미사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다면 미사의 핵심적인 예식은 무엇이며 부차적인 예식이 무엇인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경우에만 음악봉사자는 미사 전체의 음악적인 균형과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곡을 만들거나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 것을 모를 경우에는 미사 중 꼭 노래해야할 부분에서 침묵하거나, 노래로 하지 않아도 될 부분에서 거창한 음악을 연주하는 무지를 드러내게 되어 미사 전체의 균형과 일치를 잃게 하며 신자들에게 영적인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예를 든다면 미사의 시작예식은 - 사제의 권고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에서 보듯이 - 신자들이 곧 듣게될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하는 부분이기에 미사 전체를 살펴볼 때 이 부분은 미사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기 보다 부수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시작예식 부분은 거창하게 노래부르면서 뒤따라오는 말씀전례 혹은 성찬 전례를 음악적으로 약하게 꾸미게 되면 미사예절이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고 만다. 또 시작 예식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대영광송이다. 한국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이 대영광송을 미사 중에 낭독하면서 입당송을 거창하게 노래부르거나 '자비의 기도'를 노래로 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요사이 한국 교회에서 성행하는 거창한 '평화의 인사' 부분도 미사 전체의 비중에서 볼 때 과장된 것이다. 이런 실수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미사 음악에 대한 전례적인 판단을 잘못한 것이다.
다른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미사 전체를 통해 가장 중요한 노래는 바로 환호송(acclamation; 거룩하시도다, 성찬 환호송 - 기억환호송과 마침환호송 -, 복음환호송)이다. 이 환호송은 평일에도 노래하도록 교회에서 권고할 만큼 전례 음악적으로 보아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런 환호송들을 그냥 읽고 말거나 아니면 음악적으로 빈약한 노래를 사용하면서, 예물 봉헌 때나 영성체 때에, 아니면 미사 중 다른 어떤 부분에서 환호송보다 비중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미사 구조가 가지는 중요성의 순서를 무시하는 것이며 전체 미사의 일치와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 되고 만다. 만일 미사 전체를 통해서 꼭 한가지 성가만을 노래할 처지라면 어떤 성가를 택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어느 성가를 택하겠는가? 환호송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하시도다' 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마땅히 우리는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해야 한다.
위의 예들에서 알 수 있듯이 교회음악 작곡가들은 그냥 전례서에 기도문이 있으니까 이를 이용하여 곡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음악이 전체 미사 구조 안에서 어느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그리고 그 기능은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제대로 된 음악봉사 (작곡, 선곡)를 할 수 있다.
2. 무엇부터 노래해야 하는가?
우선 여러분에게 미사 중의 여러 기도 중 무엇부터 노래하여야 하는가? 를 아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Heather Reid. Preparing Music for Celebration. Liturgical Press, 1996. p.25 참조). 각 노래들에 대한 설명은 본인이 성가 게시판에 올린 '각 미사부분의 성가를 노래하는 법'을 참조하기 바란다. 게시판의 글들에는 각 성가의 역사적 변천과 의의, 그 음악의 기능, 한국 교회의 현실과 반성을 간략히 적어 놓았다. 작곡을 하든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든 성가를 고르는 사람이든 간에 각 성가들의 중요성과 그 기능을 모르고서는 제대로 봉사할 수 없다.
a) 우선적인 것
(1) 환호송들: 거룩하시도다, 성찬 환호송 ('신앙의 신비여'의 후렴과 마침환호송 -
아멘 - 복음환호송;
(2) 화답송과 대영광송이 노래로 불리어져야 하며;
(3) 행렬성가 중 영성체 때의 노래와 입당 노래.
b) 부수적인 것
(1) 하느님의 어린 양과 봉헌 예식 행렬 성가
(2) Kyrie 와 영성체 후 감사 침묵 기도
(3) 퇴장 노래
위의 정리한 것을 살펴보면 우리가 미사를 드릴 때에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로 하는 노래가 무엇인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적으로 불리어져야 한다는 이 말은 중요한 음악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고 곧 어떤 것부터 작곡되어야 한다는 것과도 통하는 이야기이다. 평일 미사 중에도 반드시 노래로 불러야 할 부분은 한국 교회가 신주 모시듯 하는 행렬 찬미가 (입당, 봉헌, 영성체, 퇴장)가 아니다. 바로 환호송이다. 다음으로 필요한 노래는 시편성가 (즉 화답송)와 찬가 (대영광송)이다. 다시 한번 부탁하지만 성가게시판을 참조하여 각 노래의 중요성과 기능을 공부하기 바란다. 이렇게 전례 음악봉사자는 미사 전체의 구조를 익히 알고 미사의 어떤 부분을 꼭 음악으로 하여야 하는지, 아니면 노래로 부르지 않아도 되는지를 모르고서는 전례 음악지도자로서 역할을 할 수 없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많은 교회음악 봉사자들은 전례나 전례음악에 대해서 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는 안타까운 처지이기 때문에, 이런 분들은 교회의 문헌이나 전례서적 등을 통해 독학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많은 교구에서 종교(전례, 성)음악 연구소들이 설립되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생업에 종사하는 봉사자들이 시간을 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자신들이 봉사해야하는 전례나 전례음악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고 전례 공동체에 봉사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곡을 만들건, 성가대원으로 노래를 하건, 미사에 사용할 성가를 뽑는 일을 하건 간에 나름대로 공부하지 않고 봉사한다면 신자들에게 돌아가는 영적인 손실에 대해 너무나 무책임한 것일 수 있다.
3. 전례헌장이 말하는 성음악의 봉사적 기능 (Munus ministriale)
전례헌장과 '성음악에 관한 훈령' (1967년 3월 5일)은 전례음악의 봉사적 기능(임무)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전례 안에서 사람이나 사물의 봉사적 기능 내지 임무는 전례를 거행하는 공동체를 위해 주어진 특별한 봉사이다. 이런 봉사적 기능은 무엇보다도 교회 권위에 의해 이해되고 제기되며 법과 전통에 따라 전례 자체와 연결되어 정의된다. 교회의 전통 즉 합당한 권위에 의해 공포된 법과 그들이 주는 지침들, 각 찬미가에게 할당된 특별한 기능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회내의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마이크로서의 봉사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당연히 교체되어야 한다. 만일 독서자가 말을 더듬거나 부정확하게 책을 읽는다면 이 사람 역시 교체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노래가 더 이상 필요한 봉사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마땅히 교체되어야 한다. 그런 성가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미 성가집에 수록된 곡들이라 하더라도 성가의 기능에 맞추어 한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가톨릭 성가집에 있는 성체 노래 중 성체 강복 때에나 사용할 수 있는 라틴어 성체 찬가나 성체를 찬송하는 가사를 가진 한국 성가들은 이제 더 이상 미사 때 즉 영성체 때에 사용할 수 없는 노래들이다. 따라서 이런 노래들이 아무리 음악적으로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이제 더 이상 미사 때에 사용할 수 없는 것이기에 성가집에 그대로 있어야 할 필요도 없어졌다. 마찬가지로 새로 작곡되는 곡이라도 이런 봉사적 기능에 맞지 않는 가사를 가졌거나 음악형식을 가졌다면 과감히 도태시켜야 한다. 전례 이외의 모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런 음악들만 모아 성가집 부록으로 넣든지 따로 발행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
- 각 노래의 봉사적 기능
이와 같이 전례 안에 사용되는 음악의 봉사적 기능은 바로 노래하려고 하는 미사 의식의 구조자체의 기능과 어울려야만 한다. 몇 가지만 소개하겠다. 나머지는 '성가 게시판'을 참조하시라.
a. 입당노래: 목적은 전례의 시작을 알리며 참석한 회중의 더욱 깊은 일치, 입당행렬을
수반하며, 그날의 축일 혹은 전례시기의 신비를 소개한다. 성가의 내용은 하느님께
대한 찬미나 축일 혹은 전례시기의 의미가 포함된 것이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축
일에는 설날, 추석, 혹은 한국교회가 특별히 경축하는 날 (민족의 화해와 일치의 날)
등도 포함된다.
b. 화답송: 시편후렴을 가진 노래로서 방금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을 위한
노래이다. 그러기에 노래 자체는 신자들을 묵상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조용한
노래여야 하고 신자들에게 신바람을 불어 넣어주는 곡이 되어서는 안 된다.
c. 알렐루야: 복음전 환호송인 알렐루야는 곧 듣게될 하느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기쁨을
노래부른다. 말씀은 그리스도이신 만큼 이 노래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우리의
기쁨을 우선적으로 표현하는 노래가 되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의 속도가
빨라야 하고, 모든 신자들이 함께 하는 환호송이기에 신자들 전체가 다 같이 부를
수 있는 쉽고 단순한 곡이어야 한다. 이런 기쁨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신자들에게
너무 어렵다면 이런 노래를 작곡해서도 선택해서도 안 된다.
d. 영성체 노래: 신자 개인으로 하여금 개인 묵상을 하게 하거나 성체를 찬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잔치 식탁에서의 축제의 기쁨을 나누는 모든 신자들을 결속
시키려는 기능을 가지게 된다.
이상 몇 가지 살펴본 것과 같이 전례 안의 각 노래는 각기 상이한 봉사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훌륭한 작곡가의 명곡이더라도 이 기능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 음악은 전례음악으로서는 가치가 없다고 보아야 하며 전례에 사용해여서는 안 된다. 여러분이 잘 아는 Mozart의 Halleluia나 Bach의 B minor 미사곡 그리고 Beethoven의 장엄미사곡을 생각해 보자. 위의 작곡가들은 당시대의 모든 작곡 기법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 올려 이 작품들 안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어느 한 곡도 전례에서는 사용되지 않으며 무대에서 연주될 뿐이다. 이 음악들이 시원찮은 화성을 쓰고 음악적으로 미숙해서 전례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음악들이 전례 안에서 봉사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음악의 완성도를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음악의 봉사적인 기능을 생각하는 전례적인 판단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NB. 2-3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