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nomine patris et fili~ et sprituo sancti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
sicut et rat in princio et in saecula saculorum~~...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et cum spiri tutuo
또한 성신과 함께..
pater noster qui es in caelis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성부)~
위에 얼핏 언급한 전례기도들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음들이 머릿속에 휙 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중요한 미사중의 기도문에 특히 강조되고 있음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신부님께서 미사집전에서 꼭 중요한 기도에서나, 또는 대축일에 부르게 되는 이유가 왜일까요? 물론 한국에선 한국어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미국에선 대부분 영어로 하는 듯 한데, 아무튼 중요한 미사전례 부분에서 꼭 그레고리오 음률로 강조하는 이유가 있지 않은 가 싶습니다. 교황좌에서 라틴어로 하는지, 이탈리어어로 하는지도 궁금하구요.
저는 라틴어만이 훌륭한 언어이니, 라틴어를 꼭 써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번에 어떤 분이 한국의 국악미사를 언급해서, 번역을 했을 시에 오는 괴리감(예로 ’닭아, 닭아~~ --> chicken, chicken 으로 번역하는 것이 우습지 않을까 했는데 꼭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He committed his cause to the LORD; let him deliver him, let him rescue him, for he delights in him!"
Yet thou art he who took me from the womb; thou didst keep me safe upon my mother’s breasts.
I can count all my bones -- they stare and gloat over me;
분명 위의 언어적 뉘앙스가 한국인의 정서에 미국인이 느끼는 만큼의 성스러움을 갖게 해주지는 않으리라 싶습니다.
그 것은 우리말로 얼마나 잘 표현되고, 음악과 서로 맞을 수 있는지의 문제겠지요? 전에 이대성님께서도 지적하셨듯이, 가톨릭의 전례음악은 본질적으로 음악을 위한 음악은 아님이 분명합니다. 음악을 위한 음악이 아닌 만큼 가사의 내용 전달은 1차적인 선결이어야 함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꼭 이렇게 얘기하니까, 라틴어 미사를 반대하는 것 같습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저는 그 누구 못지않게 라틴어성가, 특히 원어로 되어진 곡을 연주할때의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가령 caro mea, sicut cervus 와 같은 팔레스트리나의 곡을 라틴어와 우리말로 불러보았을 때, 어쩐지 우리말로 불린 것은 어색함을 감추기 힘듭니다. 이는 라틴어로 된 그레고리오 성가만 뿐만 아니라 많은 라틴어로 작곡된 중세음악과 르네상스의 곡들에서 많이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헨델의 알렐루야는 어떻습니까? 우리말과 영어 두버전을 다 불러보았는데,
가령 For unto us a child is born ...unto us ..a son is given (no.12)...글쎄요..헨델이 처음에 영어로 작곡해선지, 영어와 음악은 더욱 잘 맞는듯(딕션면에서 보면)하지만, 가사의 전달면에선 비록 개신교에서 비롯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말이 더욱 신앙적으로 와닿는 걸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라틴어로 된 성가를 한글로만 개사해서 불러야 한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정말로 훌륭한 그레고리오 성가를 우리말로 부르는 것이 원래의 원전을 들어 봄에 있어서 더욱 발전과 ...뭐랄까 그 곡의 뿌리를 더욱 실감하지 않나 생각됩니다...위의 예처럼 sicut cervus 와 암사슴이 시냇물을...로 두 번 부르게 되어을 때,또는 많은 신자들이 같은 곡을 라틴어로도, 우리말로도, 심지어 외국에 나가선 다른언어로 듣게 될 시에 우리 가톨릭교회가 정말 가톨릭적(뜻: catholic = 보편적인)임을 더욱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톨릭교회가 그 지역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역사와 보편성을 갖고 모든 인종과 문화가 다른 곳에서도 하나임을 포용할 수 있는데 라틴어로 된,,또는 독일어나, 영어로된 성음악들이 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성음악의 1차적 임무가 전례예식을 더욱 위로 끌어올릴 수 있게 하려는 데 있지, 음악회를 여는 것이 아닌 한 가끔식의, 혹은 종종 알맞은 경우에 외국어로 불리는 성가는 더욱 성음악을 성스럽게 하지 않을 까 싶네요.. 그 부분을 슬기롭게 되어질 수 있다면, 그 누가 반대를 할 까 싶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여러분들이 얘기하시는 바와 같이, 마찰이 있나봅니다. 이 문제는 제 자신 아무리 생각해도, 전례음악의 토양이 아직까지 확고하지 않아서 비롯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전례음악의 전문가가 아니신 신부님이 간섭을 하는데도 문제가 있지만, 성음악을 봉사하는 지휘자분들 역시(물론 저를 포함해서요), 분명히 전례와 신앙적인 면에서 무장되어 있지 않아서 생긴다고 봅니다. 음악적으로 훌륭한 곡들은 얼마든지 있지만, 분명 우리는 음악을 들으러 미사를 가는 건 아니라 봅니다. 단 조금이라도, 음악이 미사전례에 불필요하거나, 방해가 된다면,또는 효과적이지 않다면 음악은 없거나, 또는 대체 될 수 있으리라봅니다. 저역시 음악없이 행하여지는 미사가 얼마나 거룩할 수 있는지 많이 느껴왔고, 제 자신 미사에 임하면서, 이 성가대가 음정이 떨어지고 안 떨어지고, 울림이 좋고 나쁘고를 따지기 보다는, 미사전례의 다른 많은 부분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성음악의 무용론을? 천만에 말씀입니다.
성인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했던 것 처럼, 성음악은 참으로 중요한 수단인 것 같습니다. 특히, 거록한 전례를 더욱 거룩하게 만들어 준다고 봅니다. 바르게 사용된 성음악은 전례를 더욱 거룩하게 만들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그 분심과 영향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같은 사람은 가령 좀체로 적인 음
팦적인 음계에 기도를 달은 성가에 따라 노래하면서, 전례에 참여하는데 애로를 느낍니다. 제가 부족하고, 마음이 열려있지 않은지는 모르겠지만, 에레스투에 주님의 기도를 부르게 되면, 저는 원ㄹ
원래의 라틴국가(아르헨티나 인지?)의 배경이 자꾸 생각되어, 차라리 음악이 없는 편이...속 편하겠습니다. 더욱 심한 것은 제가 미국에선 겪었던 일이지만, 영성체후송대신으로 오르가니스트가 사뮤엘 베버의 ’아다지오’를 연주하는데,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자꾸 영화 플래툰의 마지막 전쟁 장면이 연상되더군요..어떠한 역사적이유나, 경로를 통해서, 베버의 곡이 세례받아 성음악으로 연주될 수 있겠지만, 짧은 시간내에 아무 생각없이 들어 올 수는 없겠죠..
그에 비해서, 많은 그레고리오 성가와 중세, 르네상스의 곡들은 역사로 보나, 그 작곡동기로 보나 너무나 많은 연결이 되어서 쉽게 성스러움을 배가 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한 때는 바로크시대의 바흐곡도 분심을 일으킬 때가 있었으니까요(물론 이는 저의 경우입니다.)
저 개인 현대음악을 사랑하고, 사실 저 자신은 바로크, 고전, 낭만의 곡들 보단 단연 현대곡을 좋아하지만, 전례에 도움이 되지 않을 듯 한 현대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아니, 많은 회중이 이런 저런 이유에서 분심을 갖는 다면, 일단 전례음악에서만큼은 1차적인 기능을 상실했으니, 없느니만 못합니다. 그래서, 사실 다양한 행사나, 미사전례가 아닌 다른 예식에서 소개를 해주는 편으로 시작하는게 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제 논지가 두서가 없어서 말이 않되는 듯, 이랬다 저랬다 했다고 생각하시면, 우둔함을 질책해 주시길 바랍니다.
부활 첫 주일에
강형석 스테파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