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감독 vs 성가대지휘자
새로운 노래를 주님께!
2002년 6월, 대~한민국은 단군이래 최고의 달을 맞이했다.
축구 공 하나의 묘기로 인해서 애국심과 자신감이 충천하고 십년 묵은 체증이 뚫린 환자도 있고 축구 이야기라면 하품을 하던 여자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축구광이 되었는지....참으로 세상사 모를 일이다. 전례음악용어로도 "환호"가 어떤것인지 새삼 느끼게 해 준 응원열기도 있다.
축구 열풍과 함께 외국인 감독 히딩크 신드롬이 엄청나다. 마치 제2의 구세주를 대하 듯 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 분 정도의 축구 경험과 기술을 가진 감독이 대한민국에는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어찌 보면 과거 우리의 축구 감독들이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이 눈치, 저 눈치, 이 연고, 저 연고를 배려하다가 일을 그릇친 것을 외국인 감독은 원칙대로 소신껏 밀고 나간 것이 적중했으니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는가? 히딩크의 쾌거는 정치인, 경제인, 교육인 등 모두 에게 좋은 교훈을 주었는데 우리 교회음악계에는 교훈이 없을까?
있다!
바로 성가대 지휘자 문제이다(음악계의 고질적 문제는 논외로 하고...), 대도시 큰 성당의 경우에 본당 출신 지휘자를 선임한 경우와 외부(타 본당 출신)지휘자를 선임하는 경우에 여러가지 대비가 된다. 소속 본당출신의 지휘자를 쓰면 본당 관리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다.
-보수(교통비)를 안 줘도 된다.
-본당에서 사목위원이나 원로들이 지휘자에게 다양한 요구를 할 수 있다.
예컨데 선곡 주문이나 성가 연주 템포에 대하여 참견할 수 있고, 대축일 미사 때 아무개를 독창자로 써 달라든가 기악 연주를 시켜달라 등...
-성가대원들이 지휘자와 서로 잘 알므로 수평적, 인간적인 관계가 좋다(?).
위 사항을 뒤집어 보면 외부 영입지휘자의 장점, 단점이 나온다.
이상은 다 아는 얘기이므로 필자가 본 경험담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약 15년 전 시골 성당에서의 실화...
지방이기는 하지만 성가대 전통과 실력이 만만치 않은 성당이다.
지휘자가 공석이 되어 부득이 부 지휘자격인 청년이 지휘를 맡았다.
이 청년은 음악성도 있고 고교시절 밴드를 조직하여 활동도 하던 그 지역 토박이였다.
성가대원 구성은 청년+장년이라 아무래도 목소리 큰 중년 부인들이 있게 마련....
그런데 지휘자의 권위가 안선다.
그도 그럴것이 청년의 세례명이 "마르코"인데 성가대에서 마땅히 "지휘자님!" 하고 부르면 좋으련만 이 아줌마 부대는 그냥 "말구야!"하고 불렀다. 왜냐하면 한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 지휘자가 코흘리개 어릴적 부터 "야, 말구야!" 하고 부르던 것이 습관이 되어 어른이 되고 지휘대에 섰지만 스스럼없이 그리 불렀다. 호칭이 뭐 그리 중요한 것이냐 하겠지만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악보를 보며 "이 부분은 이렇게 부르십시오...." 해도 "야, 말구야 그게 아니다, 우리는 저렇게 불러왔다, 마 그냥 하던대로 하자!"
이리되면 지휘자가 어찌되겠습니까? 결국 새 지휘자 깜이 나타나자 서둘러 영입했습니다.
성서에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 말씀이 떠 오릅니다.
지휘자는 자체해결도 좋지만 외부 전문가를 영입 해 보는 것이 전례음악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례입니다. 본당출신 지휘자도 훌륭한 분이 많습니다만 오래 하다보면 본인도 모르는 타성에 젖기 쉬우므로 3-5년 정도 봉사하면 스스로 안식년을 갖든가 하여 지휘자를 바뀌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부연하면 우리 농수산물은 좋은것이지만 "지휘자는 우리본당 출신이라야 좋은것이여!" 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서울대교구 새 사제 43명 수품을 함께 축하하며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대축일에
대구에서
김빠뜨리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