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성가] 가톨릭 성가 114번 "나자렛 성가정"
대림 시기의 신비가 깊어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기다리는 열정은 더해 갑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성탄은 이름 모를 설렘과 희망을 선물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성탄의 의미는 이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겸손을 마음 깊이 체험하고, 그 사랑을 닮고자 하는 용기를 북돋아 준다고 생각합니다.
성탄의 기쁨은 성 요셉, 성모님 그리고 아기 예수님이 이루시는 소박한 가정을 통해 더욱 극대화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한 아버지의 아들, 한 어머니의 자녀로서, 가정의 존귀한 가치를 몸소 드러내셨습니다. 이에 교회는 1921년에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첫 주일을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로 정하고 세상의 모든 가정이 나자렛 성가정을 본받아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희망하기를 권고하였습니다. 이후 성가정 축일은 1969년 전례력 개정 때 성탄 대축일 후 첫 주일로 옮기게 되었고, 주일이 없으면 12월 30일에 이 축일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사랑으로 모인 성가정이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이 달에는 가톨릭 성가 114번 “나자렛 성가정”을 살펴봅니다.
4/4박자 리듬과 내림 마장조로 이루어진 이 성가는 예수님 성탄의 기쁨을 차분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정형적인 형식보다는 자유롭게 이야기하듯이 전개되는 이 성가는 대부분의 성가들과 달리 특별히 강약 조절에 관한 지시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성가 도입 부분에 제시된 Piano(피아노, 여리게)의 셈여림은 곡이 끝날 때까지 유지되면서 성가의 고요함과 신비감을 배가시킵니다. 또한 선율의 음과 음 사이 간격도 넓지 않기 때문에 부드럽고 여린 느낌으로 노래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유의할 사항은 ‘여리게’라는 표시는 ‘작게’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작은 소리로 노래하라는 것이 아니라, 곡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작게 하면서도 부드럽게’ 혹은 ‘작게 하면서도 깊이 있게’ 노래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성가는 고요함 속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기쁨을 만끽할 때에 그것을 표현하기 보다는 마음속으로 깊이 감사하며 그 의미를 새기듯, 성가정의 기쁨과 희망을 마음속에 간직하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생각합니다.
성가정은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이 충만해서, 우리 몸과 마음이 아무리 지치고 피곤하더라도 새로운 힘을 얻고 다시금 기쁨으로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삶의 기반입니다. 우리가 흔히 성가정을 생각할 때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이 만사가 평안하고, 먹고 입을 걱정 없는 무사태평한 가정’으로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본받고자 하는 나자렛 성가정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살펴보면, 많은 부분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던 힘겨운 현실에서, 성 요셉, 성모님 그리고 예수님은 서로를 위해 희생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노력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비로소, 하느님께서 활동하실 수 있었습니다.
과연 나는 가정에 봉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였는지, 나는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인내하였는지 깊이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성가정은 구성원 모두의 희생과 봉사를 통한 사랑을 기반으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가정을 이루기 위한 희생과 봉사는 결코 보잘 것 없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가정 성화를 위한 노력은 그 어떤 봉사, 그 어떤 희생, 그 어떤 순교보다 크고 위대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1년 12월호, 황인환 신부(서울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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