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성가] 가톨릭 성가 30번 “승리의 십자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은 326년 헬레나 성녀가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견하여 이를 기념하고자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침략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유물도 약탈되면서 이 십자가도 함께 빼앗겼다가, 629년에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십자가를 다시 되찾아 골고타 언덕의 거룩한 무덤 성당에 안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9월 14일로 정하여 지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형벌과 죽음의 상징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희망과 부활의 상징입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현양하며 기꺼이 따를 수 있는 용기를 청하는 마음으로 이 달의 성가는 가톨릭 성가 30번 “승리의 십자가”로 선정하였습니다.
라장조에 간단한 A-B구조로 이루어진 이 성가는 B구조에서 3/4박자 리듬으로 박자가 변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가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흥미로운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 전환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A구조와 B구조의 속도와 셈여림을 다르게 하여 명확한 대조가 느껴지게 하는 것입니다. A구조는 곡 첫머리에 명시되어 있듯이 ‘빠르고 씩씩하게’ 노래하고, B구조는 3박자 리듬을 살려 밝고 유쾌하게 노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성가의 A구조는 후렴이고, B구조에서 독립적 선율을 노래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후렴인 A구조가 성가의 전반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과 B구조에서 베이스 선율이 주된 선율을 이루고 그 이외의 성부는 허밍(Humming)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베이스 선율과 허밍으로 노래하는 성부 사이에는 상당한 음역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선율이 분리되어 조화롭지 않은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베이스 선율은 이음줄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 강하지 않고 부드럽게 노래해야 할 것입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듣는 요한 복음서 3장 13~17절의 말씀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사건을 전합니다. 뱀에게 물려 죽음의 위험에 처해 있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들어 올린 뱀에 의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바로, 들어 올려질 구원의 표징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즉,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모든 이가 바라보는 앞에서 당하는 죽음입니다. 이는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비참함과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형벌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죽음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잘 알고 계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소명으로 수용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비참함과 자기 연민을 느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그러한 감정이 과연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의 감정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죽음 이면에 숨겨진 희망을 알고 계셨습니다. 부활의 영광을 이미 알고 계셨기에 비참한 죽음을 당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이제, 선택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달렸습니다. 죽음 이면에 숨겨진 부활의 영광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유일한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드러난 하느님의 영광을 이제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으로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따라서 세상의 멸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님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이 필요합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2년 9월호, 황인환 신부(서울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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