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27 · 끝)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올리브산의 그리스도’
사람의 아들 예수의 두려움과 고통 ‘장엄미사’와 ‘C장조 미사’를 제외하고는 교회음악을 거의 작곡하지 않았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유일한 오라토리오로 ‘올리브산의 그리스도’를 남겼다. 오라토리오는 대개 종교적인 소재를 취하고는 있지만 전례에 사용되는 음악이 아닌 세속음악이다. 더구나 그리스도 수난사의 일부를 작곡한 ‘올리브산의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는 작품이었다. 베토벤보다 한 세기 앞선 바흐나 헨델 시대만 하더라도 배우나 가수가 예수 그리스도 역할을 맡아 무대에 선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 같은 성금요일 전례음악에는 예수 역할을 맡는 가수가 등장하지만,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같은 세속음악의 무대에 예수가 등장할 수는 없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에는 예수 역의 가수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데도, 당시 관객들은 이 작품이 그리스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헨델의 ‘불경죄’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올리브산의 그리스도’ 대본을 쓴 프란츠 크사버 후버는 베토벤 시대에 이름 있는 오페라 대본가였다. 그는 복음서에 나오는 ‘겟세마니에서의 기도’(마태오 26,36-46 마르코 14,32-42), 그리고 같은 내용인 ‘올리브 산에서 기도하시다’(루카 22,39-46) 부분에 예수님이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부분을 덧붙여 이 작품의 대본을 만들었다. 십자가 수난을 앞둔 예수 그리스도는 겟세마니 동산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간 다음 혼자 기도하러 올라가시면서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나와 같이 깨어 있어라”라고 말씀하신다. 어려운 문제를 혼자만의 결단으로 풀어야 할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내 고통과 근심에 동참해준다면 얼마나 든든한 일일까. 그러나 제자들은 깨어있지 못하고 모두 잠이 들었다. 예수님이 가장 믿으셨던 수제자 베드로도 다를 게 없었다. 기도하다가 내려와 제자들에게 “깨어 있어라”라고 자꾸만 채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인간적이다. 하느님과 직접 이야기할 수도 있는 그분이 어째서 나약하고 하잘것없는 인간의 관심과 사랑을 그토록 간절히 바란단 말인가. 이 고통과 죽음이 사람들 모두에게 구원과 부활을 약속하는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면서도, 인간인 예수님은 너무나 외롭고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두려움이 컸으면, 안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만 하시면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셨을까. 그러나 결국 예수님은 “아버지, 이것이 제가 마시지 않고는 치워질 수 없는 잔이라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는 말로 결연히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대본가 후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외로움과 두려움을 강조해 대단히 드라마틱한 대본을 만들어냈다. 성경의 핵심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긴 하지만 세라핌 천사(소프라노)와 예수 그리스도(테너)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 점이 독특하다. 예수가 병사들에게 잡혀가는 장면에서는 베드로(베이스)도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예수는 천사에게 하느님의 뜻을 묻는데, 그 질문 속에는 고통스런 죽음을 면하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천사는 “십자가를 통한 용서와 구원이 완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결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하느님의 뜻을 전한다. 그러자 마침내 예수는 결단을 내리고, 천사와의 듀엣 속에서 그는 “고통과 두려움이 너무나 크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이 더 크다”라고 말한다. 베토벤이 이 오라토리오를 작곡한 시기는 1801년에 오스트리아 쇤브룬 근처에 머물렀던 2주일간이었고, 작품의 초연은 1803년 4월 5일에 이루어졌다. 베토벤은 대본가 후버의 음악적인 감각을 높이 평가했고 2주일 내내 함께 작업했지만, 그러면서도 그가 쓴 대본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불평이 많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작곡에 대해서도 “너무 드라마틱해 경건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이 작품 전체에 불만을 표했다. 그러나 이 ‘올리브 산의 그리스도’는 베토벤 생전에 대성공을 거두고 청중의 사랑을 받게 된 많지 않은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이 작품 덕분에 베토벤은 자신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작곡을 의뢰받기도 했는데, 실제로 ‘올리브산의 그리스도’의 피날레를 비롯한 몇 부분은 그의 ‘피델리오’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극적 효과가 강조되어 있다. 병사들과 싸우려는 베드로를 제지하시며 예수님은 “칼을 칼집에 넣어두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때 나오는 천사와 예수님과 베드로의 3중창 ‘너희를 미워하는 이들을 사랑하라, 그래야 하느님이 너희를 사랑하신다’는 이 오라토리오의 절정을 이루며, 부활의 영광을 예시하는 천사들의 마지막 합창은 긴 사순절 동안 수난의 고통에 지친 마음을 위로해 준다. [이용숙 · 안젤라 · 음악평론가] Tip 영화 ‘불멸의 연인’ 속, 베토벤이 그의 ‘불멸의 연인’과 어긋나는 장면에서 오라토리오 ‘올리브산의 그리스도’가 격정의 화면을 감싸 안는다. 이 영화에서는 베토벤의 운명적인 삶의 단편과 함께 그가 전 생애 동안 완성해 낸 위대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베토벤 음악의 권위자로 알려진 게오르그 솔티가 음악감독을 맡아 더욱 관심을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올리브산의 그리스도’는 베토벤이 처음으로 작곡한 교회음악 장르 작품이다. 하지만 다른 곡에 비해 평소 자주 연주되는 곡은 아니며 곡의 특성상 사순시기에 관심이 더욱 끌린다. 이 곡을 작곡한 시기를 전후로, 베토벤은 귓병의 괴로움으로 힘겨워하고 있었다. 청각 장애가 심해지면 자신의 음악적 재능까지 묻혀버릴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살까지 생각하며 유서를 써놓을 정도였다. 그 때문인지 운명에 대한 체념과 고통의 극복을 묘사한 이 오라토리오의 가사는 베토벤이 직접 겪은 고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이용숙 칼럼니스트는 이 곡을 들어볼 만한 음반으로 세르주 보도가 지휘하고 리용 국립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모니카 피크 히에로니미 등이 연주한 음반(Harmonia Mundi)과 크리스토프 슈페링이 지휘하고 다스 노이에 오케스터 쾰른, 코루스 무지쿠스 쾰른 등이 연주한 음반(Opus 111) 등을 추천한다. 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세 사람의 독창과 혼성 4부 합창, 관현악 편성으로 연주되는 이 곡은 십자가 수난을 앞둔 예수의 고통과 심경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마지막 합창곡인 ‘천사들의 합창’은 베토벤 특유의 힘차고 생명력 넘치는 분위기도 선사한다. 그동안 ‘쉽게 듣는 교회음악 산책’과 ‘쉽게 보는 교회미술 산책’을 집필해 주신 이용숙씨, 최호영 신부, 고종희 교수, 김현화 교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톨릭신문, 2009년 3월 29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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