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성가] 가톨릭 성가 284번 “무궁무진세에” 9월은 아시다시피 순교자 성월입니다. 따라서 계절의 성가도 우리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고 본받자는 내용의 성가를 선택해야 마땅합니다. 한국 순교자를 기리는 성가로는 단연 283번 ‘순교자 찬가’를 꼽습니다. 고 이문근 신부께서 지으신 이 곡은 1925년에 우리 순교자들이 복자품에 오르는 시복식이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될 때 불려서 참석했던 한국 신자들의 가슴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게 했습니다. 당시는 제목이 ‘복자찬가’였습니다만 1984년에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하시던 중에 복자들을 성인으로 시성하면서 ‘순교자 찬가’로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성가를 소개합니다. 284번 ‘무궁무진세에’입니다 작곡자는 19세기 프랑스 낭만음악의 대가로 꼽히는 구노(Ch. Fr. Gounod 1818-1893)입니다. 구노는 우리나라의 초대교회를 이끌어준 앵베르, 모방, 샤스당 세 프랑스 선교사들을 기리며 이 성가곡을 썼습니다. 이 세분은 기해박해가 있었던 1839년 9월 21일 순교하셨는데 그해 이 소식을 들은 구노는 세분의 천상승리를 축하하는 뜻으로 이 곡을 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영향은 마침내 구노로 하여금 7년 뒤인 28세(1846년)에 드디어 그분들이 공부하였던 생 슐피스 신학교에서 파리 외방선교회의 외부학생으로 공부하면서 신부가 되려는 꿈을 갖게 했습니다. 물론 2년 뒤에는 음악가로 되돌아갔습니다. 지금도 서울 신학교의 박물관에는 1850년대에 제작된 프랑스제 대형 풍금(Harmonium)이 하나 보존되어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구노가 보내준 선물이라고도 하나 확실한 근거는 모르겠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구노와 앵베르 주교께서 신학교 시절에 우정을 맺었다고도 하는데 이는 앵베르 주교가 사제서품을 받고 일년 뒤에 중국으로 선교를 떠난 1820년과 비교해보면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대 작곡가가 우리 한국교회와 인연을 맺고 성가를 하나 헌정했다는 것은 큰 기쁨이고, 우리는 이 성가를 열심히 불러서 보답을 해야 하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구노는 아마도 선율만을 작곡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가사는 훗날 익명의 작가가 붙였을 것인데, 가사 속에는 세분의 프랑스 선교사들의 이름과 더불어 성 김대건 신부님의 이름도 나옵니다. 그리고 유베드로(대철) 13세 소년 순교자, 골롬바 동정 순교자들에게도 가사 한 절씩을 헌정하여 순교의 영광이 남녀노소 모든 이의 것이었음을 나타냅니다. 이 성가 가사에는 1986년의 성가책 개정작업 때도 차마 손을 대지 못한 치명(순교), 용덕(용맹의 덕), 찬류세상(눈물의 세상), 진도(참된 길), 탁덕(사제), 진복(참 행복) 등의 옛말들이 그냥 남아 있어서 그 뜻을 배우고 불러야 합니다. 음악적으로는 6/8박자인데 이를 6박자로 부르면 너무 싱겁고 지루합니다. 8분음표 세 개씩을 하나로 묶어서 2박자로 부르면 훨씬 부드럽고 프랑스적인 선율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 아쉬운 점은 아주 잘 부르는 사람이 앞에서 자신 있게 이끌어가지 않으면 맛있게 부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노래방에서 유행가 연습하는 정도의 정성만 쏟아서 연습한다면 누구나 아름답게 부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08년 9월호, 백남용 신부(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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