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백성의 예배] 시편 화답송은 그 자체로 ‘말씀 선포’이다
신호철
시편은 먼 옛날부터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보배로 불릴 만큼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사랑받아 온 하느님의 말씀이요, 예수님의 노래이자 예수님 안에서 부르는 우리들의 노래다. 이러한 시편의 가치가 시대를 지나면서 잊혀져 갔고 그것을 다시 회복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큰 결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본당 전례에서 시편 화답송의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따름 노래’들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미사 시간이 다소 길어진다 하여 입당 성가의 구절 수를 줄이듯이 시편 화답송의 구절 수를 조절하거나 다른 성가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그것이다.
시편 화답송은 제1독서에 대한 응답가가 아니다
시편 화답송은 이전에 ‘층계송’ 또는 ‘응송’이라고도 불렸다. 시간 전례(성무일도)에서 성경 소구를 낭독한 다음에 ‘응송’(responsorium)이라는 ‘응답가’를 노래하는데, 이 용어와 혼동하여 시편 화답송도 제1독서에 대한 응답가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시편 화답송에서 ‘화답송’(responsorialis)이라는 말은 이 노래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가리킨다. 화답송 형식이란 선창자가 후렴을 부르고, 그 후렴을 회중이 반복한 뒤, 선창자가 시편을 한 구절씩 부를 때마다 회중이 후렴으로 응답하는 노래 형식이다. 화답송은 시편을 노래하는 여러 가지 형식 가운데 하나이며, 이 외에도 대략 다섯 가지 정도의 형식이 더 있다. 시편 화답송은 화답송의 형식으로 노래하는 것이지, 그 내용이 무엇에 ‘화답’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면에서 시편 화답송이 제1독서와 관련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제1독서에 딸린 노래 내지는 그에 대한 응답가인 것은 아니다. 시편 화답송의 내용에서 드러나는 주제가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과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지 시편 화답송이 그저 제1독서에 붙어있는 보조적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시편 화답송은 따름 노래가 아니라 말씀 선포이다
미사 중에 부르는 입당송, 봉헌송, 영성체송 등도 화답송 형식으로 시편을 노래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노래들은 특정한 전례 행위에 동반하는 ‘따름 노래’이다. 이러한 노래는 동반하는 행위에 맞게 길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시편 구절의 수를 늘릴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으며, 이러한 형식을 ‘열린 형식’이라고 한다. 열린 형식의 경우에는 노래를 마치는 시점을 알려줄 필요성이 있는데, 제일 마지막에 선창자가 영광송을 노래함으로써 이를 알려주고 영광송을 듣고 나면 후렴을 부른 뒤 노래를 마치는 것이다.
그러나 시편 화답송의 경우는 노래의 마침을 알려주는 영광송이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떤 전례 동작에 동반하는 따름 노래가 아니어서, 길이를 조절하고 마침을 알려줄 필요가 없어, 열린 형식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시편 화답송은 무엇에 동반하는 성가가 아니라 회중이 선창자, 성가대와 함께 성경 말씀(=시편)을 선포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하나의 ‘말씀 선포’이다. 따름 노래가 아니라 말씀 선포이므로 선포되는 내용을 온전하고도 충실히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고, 따라서 열린 형식이 아니라 길이를 조절할 수 없는 ‘닫힌 형식’으로 되어있다.
다른 따름 노래들은 후렴이 제시된 다음에 시편 구절로 부를 시편 번호만 지시되어 있는 반면에, 시편 화답송의 경우 후렴과 함께 ‘선포’하여야 할 시편 구절들이 “미사독서목록집(OLM)”에 모두 구체적으로 지시되어 있고 그에 따라 “독서집”에 시편 구절들이 정확히 실려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편 화답송이 단순히 제1독서에 대한 응답가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말씀 선포이므로, 이것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부가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말씀전례에서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OLM, 19항).
그러면 말씀 선포인 시편 화답송을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가?
시편은 원래 유다교 회당에서 부르던 찬미가 가사집이며, 이러한 시편의 특성을 살리고자 시편 화답송은 노래로 선포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OLM, 20항).
시편 화답송이 말씀 선포이므로 시편 구절을 늘리거나 줄이지 말고 지시된 그대로 온전하고 충실하게 선포하여야 하며, “독서집”에 지정된 시편 화답송 대신에 교도권이 승인한 성가집(예를 들면, “로마 성가집”)에 있는 시편을 노래할 수는 있으나, 그 외의 다른 성가로 함부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로마 미사경본 총지침”, 61항).
말씀 선포의 고유한 장소가 독서대이므로 시편 담당자는 독서대에서 시편 구절을 선포하는 것이 원칙이다(OLM, 22항). 선포되는 말씀은 신자들의 귀에 또렷하게 전달되어야 하므로 시편 구절은 주로 독창으로 노래하며, 혹시 성가대가 노래할 경우는 본문을 온전히 전달하는 데 상당한 기술과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신호철 비오 - 부산 가톨릭 대학교 교수·신부. 전례학 박사.
[경향잡지, 201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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