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음악의 세계] 전례성가가 지녀야 할 요건들 우리는 지난 호의 내용을 통해 전례성가란 전례텍스트, 곧 전례문(典禮文)에 적합한 선율을 입힌 노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입당송이나 영성체송과 같이 그날의 전례를 위해 주어진 전례문이 아닌 다른 텍스트를 가사로 취해서 작곡된 대중성가들도 전례 안에서 합법적으로 불릴 수 있게 되었으며, 사실 오늘날 우리가 전례 안에서 즐겨 부르는 대부분의 성가들이 이러한 부류의 대중성가들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례 안에서 불리는 성가의 가사들은 항상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여야 하며, 주로 성경과 전례의 샘에서 길어 올려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전례헌장 121항 참조) 또한 직접적으로 전례문이 아닌 이러한 가사들은 원칙적으로 지역교회 권위자의 인준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기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성음악훈령 32항 참조) 따라서 어떤 성가가 개인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나 신앙체험을 노래하고 있을 때에는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훌륭한 성가라 할지라도 교회의 공적인 예배인 전례를 위한 성가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가사의 요건만 채웠다고 해서 모든 성가가 전례성가가 될 수 있을까요?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는 “노래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일(Cantare amantis est)”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랑을 하거나 사랑을 받고 있을 때에는 저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노래하게 되어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유행가”라고도 부르는 대중가요들도 사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노래가 대부분이지요. 사랑하기 때문에 기쁘고 행복한 사람들이 노래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힘들고 아픈 사람들이 노래하고 있지 않습니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주옥같은 오페라의 아리아들 또한 이러한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 대부분이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 또한 하느님을 온 마음과 정성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분께 깊은 사랑과 흠숭을 드리는 전례 안에서 당연히 노래합니다. 그러나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사랑과 그 표현의 방법이 다르고, 자식에 대한 우리 아버지들의 사랑과 그 표현의 방법이 다르듯이, 사랑은 그 성격과 대상에 따라 다양한 표현과 방법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전례 안에서 부르는 우리의 사랑의 노래에도 마땅히 거기에 합당한 내용과 형식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는 하느님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인 전례에서 사용될 음악은 거룩해야 하고(Sanctitas), 음악적으로도 우량성을 지녀야 하며(Bonitas), 또한 보편적이어야 한다(Universalitas)고 한결같이 가르쳐 온 것입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의 전례 안에서 거룩함과 신비의 차원이 점점 등한시되고, 감성의 충만을 마치 신앙의 성숙, 또는 신심의 깊이로 오인하는 듯한 현실이 전례음악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존재의 조건을 감안할 때 감성적 충만이나 감흥의 요소가 간과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지나칠 경우 교회 공동체의 의식(儀式)은 신적인 영역이 배제된 인간감성의 잔치로 변질될 수 있고, 그 의식에서 주어지는 감성적 효과 또한 그리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전례성가의 음악적 완성도 또한 중시되어야 합니다. 수백 년 전의 성가들이 오늘날까지도 사랑받고 불릴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이 당시의 대가(大家)들에 의해 작곡된 훌륭한 노래들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설계와 건축의 뛰어난 전문가들이 성전(聖殿)을 짓는 것을 당연시 한다면, 영적인 성전을 이루는 일과 직결된 전례성가 또한 그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작곡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특히 신심 깊고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좋고 아름다운 성가를 작곡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손 치더라도, 오늘날 ‘성가’라는 이름을 달고 무분별하게 작곡되어 나오는 노래들 중 그 음악적인 완성도가 심각하게 떨어지는 노래들이 적지 않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며, 더구나 이러한 노래들이 아무런 비판이나 검증의 단계없이 무분별하게 전례 안에서 사용되고 있으니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대중의 취향은 항상 존중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이 전례성가가 당연히 지녀야 하는 작품성과 예술성을 무시하는 근거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월간빛, 2011년 2월호, 곽민제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전례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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