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문화산책] <22> 성음악 (5) 르네상스 시대 음악
조성음악 발달과 함께 미사곡 · 모테트(무반주 다성음악) 자리잡아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옛 음악을 녹음한 음반을 접할 기회는 별로 없다. 설령 기회가 닿는다 해도 별로 친숙하지 않은 분위기 탓에 다시 찾지는 않게 마련이다. 여기서 말하는 옛 음악이란 사람에 따라 바흐 음악도 포함될 수 있고 그 이전의 팔레스트리나 음악까지만 포함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사에 따르면, 어색한 음악은 지난 회에 언급한 아르스 노바(Ars nova) 시대 음악까지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당시까지는 선법(旋法, Mode) 음악이었고, 그 이후 르네상스 시대부터는 선법에서 조성(調性, To nality) 음악으로 변화 조짐이 뚜렷해서다. 음악은 시대 흐름과 더불어 사람들이 느끼기에 자연스러운 흐름을 갖는 선율 쪽으로 변화돼 왔다.
- 조스캥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아르스 노바 시절까지 음악은 주로 선법음악이었다. 선법 음악은 레(Re)로 끝나는 레 선법, 미(Mi)로 끝나는 미 선법, 파(Fa)로 끝나는 파 선법, 솔(Sol)로 끝나는 솔 선법이 있다. 또한 각 선법은 정격과 변격으로 나뉘어 도합 8개 선법으로 이뤄졌다. 사람들은 아직 자연스러운 선율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었던 셈이다. 우리가 지금 그레고리오 성가를 듣거나 부르기가 편치 않은 것은 선법음악이어서다.
장조 · 단조로 구성된 조성음악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음악은 우선은 장조와 단조로 구성된 조성음악이다. 그 특징은 한 옥타브의 음의 사다리, 즉 음계(音階, Scale)에서 반음(半音)의 위치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정해진다. 3음(미)과 4음(파) 사이가 반음이고 7음(시)와 8음(도) 사이가 반음이면 장조라 한다. 이에 비해 2음과 3음 사이가 반음이고 5음과 6음 사이가 반음이면 단조라 한다. 또 노래가 끝날 때 장조는 주로 도(Do)로 끝나는 분위기이고, 단조는 주로 라(La)로 끝나는 분위기이다. 이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져 누구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이런 조성은 우리가 약속해 제정한 것이 아니라 음악사의 긴 흐름 속에서 점진적으로 발견된 것이다. 그야말로 자연(自然)스러운 것이다. 이런 조성음악으로의 변화는 이미 팔레스트리나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바흐에서 확립된다.
부르고뉴(Bourgogne) 악파의 조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1525~1594)를 대표로 하는 르네상스 시대 음악은 그 직전 시대에서 준비되기 시작한다. 흔히 말하는 부르고뉴 악파와 플라망(Flamand) 악파다. 프랑스 동부에 있던 부르고뉴에서 발달한 부르고뉴 악파는 기욤 뒤파이(1397?~1474)라는 걸출한 음악가를 배출하면서 음악사의 전면에 떠올랐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부르고뉴 악파를 플라망 악파에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민족이 달라 음악사에서 따로 언급하는 것이 상례다. 뒤파이의 음악은 우리가 친숙한 혼성 4성부 편성으로 이뤄졌다. 소프라노(Superius), 알토(Contratenor altus), 테너(Tenor), 베이스(Contratenor bassus)가 바로 이때부터 사용됐다. 물론 당시에는 여성이 성가대원으로 전례에 참여할 수는 없어 남성들이 높은 가성대(假聲帶)를 이용해 여성 음역을 노래하게 했지만, 그 성부 이름은 지금도 혼성합창에 사용되고 있으며 당시 곡들은 혼성합창단이 부르기에 큰 무리가 없다.
- 조스캥의 모테트 '압살롬, 내 아들아(Absalon, fili mi)!'라는 악보는 모방기법의 한 예이다. 소프라노가 먼저 시작하고, 알토와 테너와 베이스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같은 선율을 노래한다.
뒤파이의 영향 속에서 비롯된 플라망 악파는 한때 네덜란드 악파라고도 했다. 그러나 활동 중심 무대가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북부, 네덜란드 남서부에 걸쳐 있는 플랑드르 지역이어서 플라망 악파로 불러야 마땅하다<지도 참조>. 르네상스 시대 교회음악의 모태인 여기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대위법 기법이 완성됐고, 특히 '동기의 모방' 기법이 자리를 잡았다. 모방 기법은 구 예술(Ars antiqua) 시대에 영국에서 발달한 돌림노래(Ron dellus) 방법을 조금 발전시킨 것이다. 예를 들면 소프라노가 먼저 "도- 레 미 파 파 미"라는 선율로 노래를 시작하면, 알토가 뒤따라 똑같거나 혹은 거의 같은 선율을 부르고, 테너와 베이스도 적당한 간격을 두고 흉내를 내 동기 선율을 따라 부르며 시작하게 하는 작곡 기법이다. 이 모방 기법은 다음 세대에서는 푸가(Fuga) 기법이라는 불멸의 작곡기법으로 발전한다.
플라망 악파에서는 한꺼번에 갑자기 셀 수 없이 많은 작곡가들을 배출했고, 이들의 음악은 지금도 큰 거부감 없이 감상할 수 있어 음악애호가들을 기쁘게 한다. 예를 들면 플라망 악파의 시조 요한네스 오케겜(1430~1497)을 비롯해 야콥 오브레히트(1450~1505), 조스캥 데 프레(1440~1521), 하인리히 이사악(1450~1517), 피에르 들 라 뤼(1460~1518), 알렉산데르 아그리콜라(1446~1506) 등이다. 이들은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출발해 유럽 전체를 휘젓고 다니며 음악을 가르치고 작품을 남겼다. 크게는 교회중심지였던 로마에 로마 악파를 세웠고, 베니스에선 베네치아 악파를 일으켰다. 이 두 악파는 아주 개성적이고 크게 달랐지만, 모두 플라망 음악가들이 세웠고 르네상스 시대 교회음악의 두 축이 됐다는 점에선 비슷하다.
무반주 대위법 정착
이들의 업적을 크게 두 가지로 꼽아보면, 첫째는 작품세계의 중심을 미사곡과 모테트에 둬 이 분야가 이후 음악가들의 작품세계의 중심이 되도록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사에서 합창단이 노래하는 부분 중 미사통상문 부분은 자비송(Kyrie), 대영광송(Gloria), 신경(Credo), 거룩하시도다(Sanctus & Benedictus),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이다. 플라망인들은 흔히 이 부분만을 묶어 미사곡(Missa)이라고 불렀으며, 미사곡의 각 부분은 공통된 시작동기를 가지도록 해서 통일성을 보여주려 했다. 미사고유문 부분은 입당송(Introitus), 화답송(Graduale, Responsorium)과 알렐루야, 봉헌송(Offertorium), 영성체송(Communio) 등이 있는데 플라망인들은 이 부분을 모테트 형식으로 작곡했다. 둘째는 오늘날 우리가 다성음악(Polyphony)이라고 부르는 무반주 대위법 음악이라는 작곡기법을 완성시켜 유럽의 여러 나라에 보급했다는 점이다. 오늘날도 명동성당이나 혹은 유럽 여러 지방의 성당에서 들을 수 있는 무반주 다성음악곡들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플라망 악파의 음악이거나 혹은 그 영향을 받은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들의 곡으로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미사곡의 제목
르네상스 시대부터 작곡가들은 미사곡에 제목을 붙였다. 제일 간단한 첫 번째 방법은 자비송(Kyrie)의 시작 동기로 사용한 그레고리오 성가 선율의 가사를 따다가 제목으로 쓰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앙투안 브뤼멜(1450~1520)의 '보라, 지진이 일어나고'라는 제목이 붙은 미사곡(Missa, Et ecce terrae motus)이 있는데, 이 곡은 부활주일 저녁기도의 두 번째 시편에 붙인 후렴노래 그레고리오 성가 '보라, 지진이 일고(Et ecce terrae motus)'라는 가사에 붙은 "레, 레, 시, 레, 미, 레, 레"의 선율을 시작동기로 해서 미사곡을 썼다. 흥미진진한 예외도 있다. '롬 아르메 미사곡(Missa, L’homme arme)'은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여러 곡이 작곡됐는데, 이 곡은 십자군 전쟁에서 신화로 전해져 오는 기사 이야기를 소재로 한 샹송(L’homme arme, 무장한 사람을 조심하라!)의 테마를 미사곡의 시작 동기로 사용했다.
- 그레고리오 성가 '보라, 지진이 일고(Et ecce terrae motus)'는 앙투안 브뤼멜의 '보라, 지진이 일어나고' 미사곡에 그 선율이 그대로 인용되고 그 미사곡의 제목이 됐다.
두 번째 방법은 시작 동기를 기존 성가에서 따오지 않고 작곡가 스스로 만든 경우인데, 당연히 선법에 따른 선율들이었고, 그 경우 몇 번째 선법인가에 따라 첫째 선법 미사곡(Missa primi toni), 둘째 선법 미사곡(Missa secundi toni)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혹 시작동기를 인용한 노래를 밝히기 싫거나 세속적 노래에서 인용한 경우엔 '이름 없는 미사곡(Missa sine nomine)'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미사곡을 두세 곡 정도 작곡했을 땐 첫째 미사곡(Missa prima), 둘째 미사곡(Missa secun da)이라고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나중에는 자신이 작곡한 어느 모테트에서 음악적 요소인 동기 선율, 화성, 리듬 등을 인용해 미사곡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모델이 된 모테트와 미사곡 분위기는 아주 흡사하게 된다. 이런 미사곡 제목은 그 모테트의 시작가사를 따다 붙였다.
세속 노래의 선율에서 미사곡의 테마를 따오는 버릇은 후대 교회 당국에서 교회음악의 타락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거룩한 전례 중에 엉뚱한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도 개신교 찬송가 중에는 '스와니강의 추억'이나 '애니 로리' 같은 세속노래 선율에 가사를 바꿔 개사해 부르는 곡들도 있다. 원곡을 모른 채 덩달아 감성에 젖어 따라 부르며 부러워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평화신문, 2013년 6월 23일, 백남용 신부(서울대교구, 교회음악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