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음악자료실

제목 가톨릭 성가 286번: 순교자의 믿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18 조회수5,702 추천수0
[이달의 성가] 가톨릭 성가 286번 “순교자의 믿음”



극심한 당파 싸움과 성리학의 내부적 모순, 심한 계급 차별, 기근과 전염병으로 인한 사회 병폐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한국 땅에 <천주실의>와 같은 천주교 교리서가 들어왔습니다. 이 교리서가 실학파와 남인계 학자들 사이에 널리 읽히면서 한국 교회는 뿌리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벽,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권철신, 권일신 등은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위해 이승훈을 북경에 보냈고, 그는 1784년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후 교리서와 성경, 성물을 가지고 귀국하였습니다. 그 후 여러 사람들의 영세 입교는 물론 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서울의 명례방(현재 명동성당 자리)에서 정기적 종교 집회를 마련함으로써 한국 최초의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평신도 스스로 주축이 되어 천주교 교리를 받아들여 신앙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유교의 위계적 신분제도와 천주교의 평등사상이 빚어낸 갈등, 그리고 천주교의 ‘조상 제사 금지’에 따른 전통 질서와 가치관 파괴의 우려 및 정치적 당파 싸움에 천주교를 이용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났고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가 이어졌습니다. 그 순교자들 중 1925년에 79명, 1968년에 24명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념하여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을 포함한 103위의 순교자들이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순교자 성월인 9월이 오면 가톨릭 성가 286번 ‘순교자의 믿음’을 자주 부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성가로 생각하기 쉽지만, 악보에는 ‘F. Henry and J. G. Walton’으로 적혀 있습니다. 원곡은 잉글랜드 출신으로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였으며 훗날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쳤던 헨리 헤미(Henry F. Hemy, 1818~1888)가 1864년 작곡하고, 제임스 월튼(James G. Walton, 1821~1905)이 1874년 편곡한 “성녀 캐서린(St. Catherine)”입니다. 이 곡은 편곡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영국 성공회 교구 신부였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페이버(F. W. Faber, 1814~1863) 신부가 가사를 붙여 ‘Faith of Our Fathers’라는 성가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이 곡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장례식에서도 사용되었으며, ‘선조의 믿음’으로 번역되는데 286번 ‘순교자의 믿음’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세도막 형식 24마디로 이루어진 이 곡은 리듬으로만 보았을 때에는 A(a+a') + A(a+a') + B(a"+a") 형식으로, 멜로디를 함께 보았을 때에는 A(a+a') + A(a+a") + B(b+b')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언뜻 보아도 리듬과 가락이 단순하고 같은 맥락의 흐름으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는 이 곡은 4분음표를 주로 사용하면서 더욱 단순하게 표현하였고, 오로지 주님만을 따르겠다는 항구한 믿음과 살아 숨쉬는 힘 있는 신앙고백을 간단명료하게 노래합니다.

과거의 천주교 교우들은 단 한 번의 성사(聖事)를 위해 평생 사제를 기다렸고, 단 한 번의 미사 참례를 위해 수 백리 험한 산길을 걸어갔으며, 박해를 피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마을을 형성하여 살았습니다. 그들이 믿고 따르는 교리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진리, 즉 ‘생명의 말씀’이었으며, 영원한 생명을 용기 있게 얻을 수 있는 신앙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103위 순교성인들 중 김대건 신부님을 제외한 모든 분들은 평신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평신도적 영성(靈性)’을 나타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선조들이 우리에게, 그리고 온 세상에 증거한 ‘평신도적 영성’을 마음 깊이 새기며, 매일의 생활 안에서 복음을 살고 신앙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길잡이, 2013년 9월호, 김우선 마리 휠리아 수녀(노틀담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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