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 이야기 - 2013. 11월호 월간 〈빛〉 게재
전례 활성화를 위한 제언
김종헌(발다살)|신부, 한티순교성지 관장, 대구가톨릭음악원 원장
조환길 타대오 교구장께서 “전례와 선교의 활성화”라는 제목으로 2014년 사목교서를 사제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주교님은 이 교서에서 우리의 삶 안에서 나와 하느님과의 친교, 형제자매들과의 친교의 심화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이 본당에서 거행되는 거룩한 전례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런 친교가 교우들의 가정과 직장과 지역으로 확장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선교가 이루어진다고 밝혀 주십니다.
그래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먼저 전례를 활성화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전례의 집전자인 사제들은 전례에서 본래의 아름다움과 거룩한 품위가 드러나도록 회중을 인도할 책임이 있는 만큼, 교우들의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가르칠 뿐 아니라 전례의 준비와 거행의 전반에 걸쳐 수도자들과 교우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십니다. 특히 전례 가운데서 선포되는 말씀에 대한 강론을 잘 준비하고, 성체성사에 대한 공경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교님의 사목교서를 읽으면서 미사전례에 대해 평소에 느끼고 있는 저의 몇 가지 생각들을 교구의 여러 신부님들, 그리고 신자들과 나누고 싶어 이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1) 너무 편의주의로 거행되는 미사 전례
최근 한국 교회에서 봉헌되는 미사 전례가 너무나 편의주의로 계획되고 거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신자분의 글에서 “한국의 성직자나 교우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한 것 같다.” 또 “신자들은 말씀의 전례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기꺼이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고 분심잡념을 시작하거나 주보를 뒤적인다.”고 적고 있습니다. 물론 ‘말씀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신자분들도 계시겠지만, 위의 지적 역시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서글픈 현상은 신자들의 탓도 있겠지만 사제들이 신자들에게 올바른 전례 교육을 못 시킨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무언가 신자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로 마음을 쏠리게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반성하게 되는 것은 신자들이 가지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존경심을 사제들이 감소시키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한국교회는「미사 전례 성서」대신「매일미사」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사제 역시 제대 위에 버젓이 이 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볍고 사용하기 편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교회는 미사 전례 중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는 반드시「미사 전례 성서」를 이용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미사 전례 성서」를 사용하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과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에 대한 커다란 존경을 나타내는 교회의 표시이자 상징입니다. 더구나 교회는 “미사 전례 성서 지침” 91항에서 전례에 사용되는 모든 서적들은 “사제용이든 신자용을 막론하고, 양질의 종이에 아름다운 활자로 인쇄하여 고상하게 보이도록 제본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매일미사」나 컴퓨터로 찍어낸 기도문을 미사 중에 사용하는 것은 신자들로 하여금 하느님 말씀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미사」는 신자들이 미사에 오기 전에 집에서, 아니면 미사 시작 전에 성전에 미리 와서 그날 미사의 주제를 알아보거나 혼자서 묵상할 때 이용하도록 교회는 가르쳐야 합니다. 한국천주교회 중앙협의회가 많은 변명을 하면서 계속해서 발간을 하더라도 미사 때에는 사제건 신자건 이런 책자를 사용하지 않도록 교회는 확실한 지침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신앙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독서 때나 복음 낭독 때「매일미사」를 보며 눈으로 따라 읽을 이유는 없을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미사 중에 성경을 함께 보거나 읽는 일조차 필요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독서자나 사제들이 기도문이나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읽어준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간편하다고 하여 미사 때, 더구나 미사를 주례하는 사제도 이런 보잘 것 없는, 재생용지로 된 간행물인「매일미사」를 보면서 복음을 낭독하고 미사를 드린다는 것은 정말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불경이 아닐까요? 그렇게 편리한 것을 찾으신다면 미사 때에 성작 대신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고요? 매 미사 때마다 성작을 씻고 닦는 번거로움 없이 일회용 컵은 한 번 쓰고 내버리면 되니 말입니다.
이런 편리함을 찾는 생각은 미사 중에 빔 프로젝트 같은 기계사용에서도 드러납니다. 요사이 몇몇 본당에 가보면 미사 중에 빔 프로젝트 같은 기계를 이용하여 사제가 미사 드리는 모습이나 성경 내용, 더 나아가 성가 가사를 성당 앞면 제대 뒤에 쏘게 되는 것을 불 수 있습니다. 미사 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비록 사제가 성전의 앞면 중앙에서 미사를 봉헌하지만, 하느님께 바치는 미사전례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우리는 그분과 한 몸이 되어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신자들의 시선은 마땅히 제대를 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계를 사용하는 본당의 신자들은 성가를 부르기 위해 제대가 아닌 제대 위 혹은 측면의 벽에 시선을 고정시키게 됩니다. 체육관 같이 큰 성당이면 모를까, 그리 크지도 않은 조그만 성당에서 미사 중에 왜 이런 기계를 사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대를 앞서간다는 신자들의 평을 기대하는 건지, 그 깊은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성체성사에 대한 우리의 공경도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성체를 분배할 때 사제가 잘못하여 성체를 바닥에 떨어뜨리게 되면 사제는 불경을 범했다는 생각으로 성작수건에 물을 적셔 성체가 떨어진 바닥을 닦았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성체를 바닥에 떨어뜨려도 사제는 아무 일도 아닌 듯 그냥 줍기만 하거나, 아니면 신자들이 성체를 주워서 가도록 가만히 보고만 있습니다. 요사이 성체성사의 의미가 옛날과는 다른가요? 성체를 존경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사제의 태도는 결국 신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받아 모시는 성체가 예수님의 진정한 몸이기보다는, 주님께서 최후만찬 때 제자들과 함께 행하신 하나의 기념물로 생각하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다른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사제들이 성체께 대한 존경심과 존경스러운 자세를 옛날만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고 그 영향으로 신자들 역시 성체성사에 대한 존경이 많이 감소한 것도 사실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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