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문화산책] <57> 성음악 (12 · 끝) 우리 시대의 교회 음악 지침들
성가대 전유물이었던 성음악, 신자들 참여로 확대 발전
예술은 그 자체로 더 심오한 미학적 세계로의 탐구욕을 가지고 있어서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예술은 특정한 전문가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전례음악에서 늘 문제시된다. 교회 전례는 대중 집회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교회음악의 지나친 심미적 발달은 전례와 충돌하고, 반면에 대중성만을 강조한 교회음악은 그 저급한 수준으로 인해 음악 전문세계에서 백안시된다.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함께 즐기면서도 음악적으로 당대의 최고 수준을 선도하는 교회음악이란 이상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특히 근대에 와서 상업성을 가진 대중예술, 혹은 실용예술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면서 순수예술과의 충돌은 심각하다. 이 둘 사이에 교회 당국의 고민이 있다.
1. 교황 비오 10세의 자의교서 「목자의 역할을 다함에 있어서」(Tra le sollecitudini, 1903년)
낭만주의 음악의 영향은 전례와 전례음악 사이에 큰 갈등을 초래했고, 그 반작용으로 프랑스 솔렘을 중심으로 한 그레고리오 성가 부흥운동과 독일어권을 중심으로 한 체칠리아협회의 성음악 복고운동이 생겼다. 이 혼돈 가운데서 교회 입장을 튼튼하게 잡아주는 교황 지침서가 나왔으니 바로 교황 비오 10세의 자의교서(自意敎書, Motu proprio) 「목자의 역할을 다함에 있어서」(Tra le sollecitudini, 1903)이다.
이 교서는 Ⅰ.일반 원칙, Ⅱ.성음악의 여러 종류들, Ⅲ.전례음악의 가사, Ⅳ.성음악곡의 외형, Ⅴ.가창자, Ⅵ.오르간과 악기, Ⅶ.전례 성가의 길이, Ⅷ.주요 방법들, Ⅸ.결론 등 아홉 항목에 걸쳐 매우 구체적 원칙들을 담고 있다.
우선 서론에서 당시 교회음악의 여러 폐악들을 지적하고, 교회음악 부흥운동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며, 이 명쾌한 지침을 내리면서 오해에서 오는 혼란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일반 원칙으로 "성음악이란 미사전례에 사용되는 구절에 적절한 멜로디를 붙여 그 구절이 갖는 의미전달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 성음악의 예술성을 강조하고, 그레고리오 성가를 성음악의 최고 전형으로 삼았다. "교회음악이 그레고리오 성가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성스럽고 미사전례에 충실한 음악이 된다. 그리고 그레고리오 성가와 조화를 이루지 못할수록 그만큼 그 성음악의 품격은 더 떨어지게 된다"(3항). 고전적 다성음악도 허용하는데, 그 이유는 다성음악이 그레고리오 성가를 충실히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동시대 음악은 주로 세속적인 이용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매우 경계했으며, 성음악이라도 이런 세속적 작품형식을 따르지 않은 곡만을 허락하였다.(5항)
가사로는 오로지 라틴어만을 지정했고, 각 지방어는 철저히 금지했다. 또 전례 기도문인 가사를 변형하거나 부분적으로 생략하거나 반복하는 등의 편집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부르라 했다. 전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실제로 성직에 있어야 했고, 여성들은 성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성가대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13항).
성음악은 원칙적으로 순수한 성악이어야 했고, 오르간 반주는 허용했다. 만일 관현악단이나 다른 악기가 반주할 경우에는 대주교의 특별 허가를 받도록 했다. 전례에서 피아노는 명시적으로 금지했고, 드럼이나 심벌즈, 벨 등과 같은 타악기류도 소란스럽고 경박한 악기로 여겨 역시 금지했다.
이 자의교서는 우리나라 가톨릭교회에서는 별로 알려지지도, 인용되지도 않은 채 사문화됐다. 오히려 개신교의 뜻있는 몇몇 음악가들이 그들의 교회음악을 운영하는 참고지침으로 인용하는 경우를 봤으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Sacrosanctum Concilium, 1963년)
이 문헌은 매우 준엄하고 보수적이었다. 그러나 유럽뿐 아니라 세계는 제1차(1914~1918) 및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을 겪으면서 전혀 새롭게 변했다. 과거의 모든 체제나 사고방식이 붕괴되고 개방화되면서 교회 변혁도 시급하고 절실했다. 이때 교황 요한 23세 주재로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교회가 신식 옷으로 갈아입는 계기를 마련했다. 개방과 시대 적응, 현대화라는 뜻을 가진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란 단어가 표제어로 등장했고, 전례개혁을 위해 「전례헌장」이 발표됐다. 이 전례헌장의 가장 눈에 뜨이는 단어는 전례에 있어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와 '모국어 사용 허용'이었다. 전례헌장의 제6장은 특별히 성음악에 할애했다.
이 헌장 역시 비오 10세의 자의교서 전통을 이어받아 "그레고리오 성가를 로마식 전례의 고유한 성가로 인정한다. 따라서 같은 조건이라면 이 성가가 전례 행위에서 첫 자리를 차지한다. 다른 종류의 교회음악, 특히 다음곡(多音曲)도 제30항에 따라 전례 의식의 정신과 부합하는 한 전례 집전에서 결코 배척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한발 더 나아간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전례 중에 신자들의 소리가 울릴 수 있도록 신앙적인 대중가곡(오늘날 성가책에 수록된 형태의 성가)을 적극 장려하기 시작한 것이다(118항). 이제 성가는 성가대 전유물에서 신자들의 몫으로 할애되기 시작했다. 사용하는 언어도 '오직 라틴어'에서 모국어를 포함하는 것으로 넓혀졌다. 또 각 지방의 고유한 음악 전통을 존중하면서 전례에 도입할 길을 열었다. 오르간 이외의 다른 악기 사용도 전례의 거룩한 분위기를 도울 수 있다면 너그럽게 허락했다. 새로 전례음악을 작곡할 때의 가사는 전체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돕는 것이 돼야 하며, 주로 성경과 전례에서 취하라 했다.
3. 성음악 훈령(Musicam Sacram, 1967년)
그러나 이 제6장만으로는 성음악에 관한 자세한 지침을 주기에 부족해 많은 질문이 쇄도했고 혼란이 야기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주임신부들은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위해 성가대를 없애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그렇게 했다. 이에 교황청 예부성성(오늘날 경신성사성)은 전례헌장의 시행 세칙에 해당하는 「성음악 훈령」을 반포했다. 이 훈령에서는 '성음악의 정의'부터 시작해 9개 장, 69개 항에 걸쳐서 매우 자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규범을 제시했다.
이 성음악 훈령도 역시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사장됐었다.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만든 '교회음악'이라는 교재에 부록으로 실렸지만, 공식 번역도 아니었고 일반에도 알려지지 않았었다. 2004년에 비로소 한국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에서 산하에 성음악분과를 두기로 계획하고, 많은 교회 음악가들과 관계자들을 모아 준비모임을 하는 과정에서 이 훈령이 공식적으로 언급되고 연구되기 시작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이 우리나라에서 연구되기까지 거의 40여 년이 걸렸으니, 로마와 한국과의 거리가 이렇게도 멀었던가?
4. 한국 천주교 성음악 지침(2009년)
한국 주교회의 성음악분과위원회 준비위원회에서는 2005년 6월 24일에 제1차 전국 성음악 봉사자 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참석자들의 뜻을 모아 한국교회 성음악 지침 제정, 새로운 성가집 편찬, 교회음악 봉사자들을 위한 지속적 교육 계획 등을 우선 과제로 선정했다. 그 결과 국내의 많은 성음악 봉사자들의 의견을 모으고 한국교회의 현 실정을 반영해 「한국 천주교 성음악 지침」이 제작 반포됐다.
이 지침은 성격상 성음악 훈령의 내용을 크게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전통음악을 공식적으로 수렴하고 또 소위 씨씨엠(CCM, 현대 그리스도교 음악)과 복음성가 형태의 곡들, 그리고 이들의 반주에 필수적인 대중음악 악기들도 일정 부분 제도권 안으로 감싸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지침서는 한국교회 사목자들과 성음악 봉사자들 모두의 필독서다. 그래서 여기서 세세한 내용을 언급하지 않으며, 오늘과 미래의 바람직한 성음악 발전을 위해 관계자들과 관심 있는 이들이 직접 읽어보기를 바랄 뿐이다.
[평화신문, 2014년 3월 30일, 백남용 신부(서울대교구, 교회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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