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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489번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27 조회수7,463 추천수0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10) 489번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 (상)


노예생활 애환 속 피어난 흑인 영가

 

 

우리 「가톨릭 성가」에서 ‘흑인 영가’라고 나와 있는 유일한 곡이 성가 489번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카리브 해 연안의 히스파뇨라 섬을 발견한 이후로 아메리카 대륙은 백인들의 식민지가 되었고, 이 백인 이주자들은 주로 광산이나 대농장을 운영했다. 노동집약적인 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많은 인력이 필요했지만,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절대다수가 백인에 의해 이미 학살당한 뒤였기에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인력 수급의 목적으로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수입하는 사업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소위 ‘인간 사냥꾼’이라 불리던 백인에 의해, 혹은 돈을 벌 목적으로 동료나 민족들을 팔아넘긴 일부 다른 흑인에 의해 수많은 흑인이 짐승 취급을 받으며 미 대륙으로 건너오게 됐다. 

 

이들은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했기 때문에 대서양을 건너오는 선박에서도 마치 외양간에 소를 싣고 오듯이 실려 왔으며, 긴 항해 동안 정욕을 풀지 못한 뱃사람들에 의해 가족이 보는 앞에서 적지 않은 흑인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적지 않은 흑인들은 열악한 환경에 병이 걸려 죽거나 혹은 기회를 틈타 스스로 바다로 몸을 던져 자살하기도 했으며, 거칠고 오랜 항해 끝에 대략 절반 정도, 혹은 많으면 3분의 2 정도의 흑인들만 살아남아 미 대륙에 도착했다고 한다.

 

미 대륙에 도착한 흑인들에게는 어떠한 종교적 집회와 행위도 금지됐고, 심지어 자신들의 토착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당함으로써 이들은 점차 아프리카에서 누렸던 자신들의 문화를 잊어갔다.

 

이런 가운데 그들은 비밀스러운 모임을 열기도 했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underground railroad)라 불리는 노예 탈출을 돕는 비밀 조직이 생겨나기도 했고, 야밤에 울창한 숲 속이나 밀밭 등지에 자기들끼리 모여 비밀 집회를 하기도 했다. 흑인 노예들의 문화를 모두 없애버리려 했던 백인 소유주들은 대개 노동할 때 부르는 노래만은 허락했는데, 이때 발생한 노래들이 ‘플랜테이션 송’(Plantation song, 농민가)이라 불리며 새로운 아메리칸 흑인들의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한편 흑인 문화 말살의 목적으로 시행된 것이 그들에게 그리스도교를 가르치는 것이었는데,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던 흑인들은 그저 예배 시간에 성경 속 인물들에 대해 그저 주워듣는 정도로 지내곤 했다. 그 가운데 이들에게 대표적으로 다가온 인물이 모세다. 

 

하느님을 대신해 이스라엘 민족 해방을 이끌었던 모세라는 인물에 대한 열망이 노예들 가운데에 자라났고, 이 열망을 바탕으로 생겨나 구전된 노래가 유명한 ‘가라 모세!’(Go Down Moses)이다. 이 노래는 한편 독재 권력에 항거하던 시절에도 ‘저항 노래’로 많이 불리기도 했다.

 

이렇게 강제로 주입받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바탕으로 노예생활의 애환 속에서 피어난 흑인들의 노래들을 ‘흑인 영가’(Negro Spirituals)라고 하는데, 이는 서구 신앙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의 토속 리듬 및 선율과 백인에게서 배운 서구 음악이 가미된 독특한 장르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평화신문, 2016년 3월 27일, 이상철 신부(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11) 489번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 (하)

 

노예들의 신앙과 한을 담은 미국판 아리랑

 

 

미국 흑인 노예들은 백인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강요당하다시피 했다. 흑인들은 백인들에게서 전해 들은 성경의 여러 인물 속에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했다. 이들은 그 안에서 위로와 희망의 씨앗을 싹 틔우고자 했는데, 이런 가운데 흑인 영가가 탄생한다. 가장 유명한 영가 중 하나인 ‘딥 리버’(Deep River)에서 이들은 이렇게 희망을 노래한다.

 

“깊은 강, 나의 집은 요르단 강 건너에 있네. 주님 깊은 강이 있습니다. 강을 건너 야영지(사실 해방된 장소를 상징)로 가기 원합니다. 오, 당신은 원치 않으십니까? 약속된 땅, 잔치가 열려 있고, 모든 것이 평화스러운 곳, 오, 주님 깊은 강을 건너 그곳에 가기 원합니다.”

 

1867년 최초 흑인 영가집 「미국 노예들의 노래집」이 출판됐고, 이어서 1871년에는 레이드(A. Reid) 목사가 조직한 최초의 흑인 그룹인 ‘주빌리 싱어즈’(The Jubilee Singers)가 피스크대학의 신앙집회에서 첫 연주를 하면서 흑인 영가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사실 앞서 언급했던 모세보다도 이들의 마음속에 더욱 깊이 파고들었던 인물은 바로 ‘예수’였다. 매질과 가시관의 고통과 모욕,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비참하게 숨을 거두셨던 그 모습 속에서 이들은 탈출을 감행했다가 붙잡혀 매질을 당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어간 가족이나 동료의 모습을 보았다. 예수님이 겪으셨던 고통은 이들이 실제로 현재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고통이 절절하게 표현된 노래가 바로 489번 성가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이다.

 

이 노래는 노동요와 같은 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우리나라의 ‘쾌지나칭칭나네’처럼 개인의 선창과 집단의 후렴이 돌아가며 부르는 구조를 띠고 있다. 재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즉흥 연주의 기원도 이 개인의 선창 부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489번 성가의 가사는 이런 식이다.

 

개인의 선창: ‘당신은 거기 있었나요? 그들이 내 주님, 십자가에 매달을 때?’

 

선창자의 삽입구: ‘때로는 이 때문에 전율하고 몸서리치며 떨게 된다네.’

 

함께: ‘그대 거기 있었나요? 그들이 내 주님, 십자가에 매달을 때?’

 

이 영가는 ‘내 주님을 못 박을 때’를 ‘그분을 나무에 못 박을 때’나 ‘무덤에 누일 때’ 등으로 변화시키며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가톨릭 성가」 책에 수록된 가사처럼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이라고 노래할 때 사실 그들은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뿐만 아니라, 그 모습 속에서 자신의 아들이나 형제가 똑같이 고통받고 죽어가는 모습을 투영시켜 같은 고통 속에 잠겼다. 우리의 ‘아리랑’이 그러한 것처럼 노래들은 때때로 그 노래를 처음 불렀던 이들의 고통이나 환희의 체험에 동참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489번 성가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고통뿐 아니라 흑인 노예들이 겪었던 비참함과 더불어 여전히 오늘날 고통 속에 잠겨 있는 이들의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노래의 힘이다. [평화신문, 2016년 4월 3일, 이상철 신부(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 가톨릭 성가곡들은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www.catholic.or.kr)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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