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51번 주 나의 목자 되시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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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7-10 | 조회수7,595 | 추천수0 | |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23) 51번 주 나의 목자 되시니 (상) 쉽게 부를 수 있는 시편에 대한 고민
- 1650년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출판된 「스코틀랜드 운율 시편집(Scots Metrical Psalter)」.
종교개혁이 한창이던 당시 가톨릭 사제로서 반종교개혁에 힘썼던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Roterodamus, 1466~1536)는 그의 헬라어 번역 「신약성경」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나는 하찮은 여성이라도 복음서와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을 읽었으면 한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인들뿐만 아니라 터키나 사라센인들도 읽을 수 있도록 이 성경들이 모든 언어로 번역되면 좋겠다. 밭을 가는 사람이 이 구절들을 노래하고, 베 짜는 사람도 흥얼거리며, 여행자들도 이렇게 흥얼거리면서 여행의 지루함을 잊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이 구절은 그가 개신교의 종교개혁 운동을 바라보며 가톨릭 교회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에 대한 그의 사상의 일면을 드러내 주고 있다.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종교개혁가들, 특히 성음악에 대해 엄격한 입장을 취했던 칼뱅에게는 누구나 쉽게 구약성경의 시편을 흥얼거리며 노래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업이었다. 이는 히브리어로 된 시편을 당시의 시 형식에 맞추어 운율을 지닌 자국어 시로 새롭게 번역하는 운동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렇게 해서 등장하는 책들이 「시편집(Psalter)」이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소위 휴그노들(프랑스와 제네바의 개신교인들)이 만든 「제네바 시편집(Genevan Psalter)」인데, 이는 오늘날의 성가집과 같은 기능을 했던 책으로서 옛 히브리어로 된 시편을 운율이 있는 자기네 언어로 번역하여 선율과 함께 수록하기도 했던 책이다. 이렇게 운율이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그레고리오 성가와 확연히 구분되는 것으로서 교회음악사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했다. 이 영향을 받아 이후 유럽 대륙과 영국에서 구약의 시편 전체를 자국어 시의 형태로 번역하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시편 성가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1650년에 「스코틀랜드 운율 시편집(Scots Metrical Psalter)」이 출판된다. 이는 이미 1564년 출판되었던 「스코틀랜드 시편집(Scottish Psalter)」을 번역의 정확성에 초점을 두어 보완해서 나온 것으로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본래 이름은 꽤 길다. 「운율화시킨 다윗의 시편. 앞선 번역과 원문을 성실히 비교하여 새롭게 번역함 : 이전의 것들보다 더욱 평이하고 부드러우며 원문의 느낌을 잘 살림. 스코틀랜드교회 연합회에서 그 권위를 인정하며 예배 시에 회중들과 가정에서 불리도록 이 책을 지정한다」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최민순(1912~1975) 신부님께서 이 과업을 이룩하셨다.
오늘 소개하는 성가 51번의 가사는 바로 이 시편집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즉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로 이어지는 시편 23편이 운율 있는 영시로 이미 1650년에 개신교에서 번역되어 널리 불리게 되었고, 이 시편이 우리 성가에 수록된 선율과 합쳐지면서 성가집에 수록되기에 이른 것이다. [평화신문, 2016년 7월 10일, 이상철 신부(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24) 51번 주 나의 목자 되시니 (하)
시편 운율의 맛 선율에 담아
- ‘주 나의 목자 되시니’의 선율을 만든 스코틀랜드 음악가 얼바인.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던 그는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시편 운율 자체를 중시하며 선율을 썼다.
51번 성가 ‘주 나의 목자 되시니’ 가사의 기원은 ‘시편의 대중화 운동’과 관계돼 있다. 이 운동은 본래 히브리어로 돼 있던 시편을 운율이 있는 영시의 형태로 번역하던 움직임이다. 이 운동의 결과물로 1650년 스코틀랜드 개신교에서 출판되었던 「스코틀랜드 운율 시편집(Scots Metrical Psalter)」에 수록된 시편 23편이 51번 성가 가사의 기원이 된다.
이 성가의 선율을 만든 이는 우리 성가집에 수록된 대로 스코틀랜드의 음악가였던 얼바인(Jessie Seymour Irvine, 1836~1887)이다. 아버지가 장로교회 목사였던 그녀는 오르간을 즐겨 연주하며 성가 선율을 종종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1997년 영국의 신학자 브래들리(Ian Campbell Bradley)는 자신의 책에서 이 여성을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던 아마추어 음악가로서 스코틀랜드의 전통을 지니고 있었던 이, 영국에서 점증되고 있던 특정 가사를 두고 선율을 만들던 당시의 경향과 달리 정형화된 시편의 운율 그 자체를 중시하며 (운율이 맞는 어떠한 가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 선율을 썼던 이”라고 밝히고 있다.
얼바인은 「스코틀랜드 시편집」에 수록된 시편 23편의 영어식 운율을 충실히 따라가며 이 선율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선율은 그녀의 아버지가 목회 활동을 했던 스코틀랜드의 마을 이름을 따서 ‘크리몬드’(Crimond)라고 불린다. 이 선율은 세계적으로도 시편 23편에 붙인 선율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선율로 손꼽히고 있다. 이 선율을 작곡할 당시 그녀는 오르간을 한창 배우고 있던 10대였으며, 이 선율은 그녀가 오르간을 연습하기 위해 쓴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 선율은 1872년에 스코틀랜드에서 출판된 「북부 시편집」(The Northern Psalter)에 처음으로 실려 출판되었는데, 이때에는 가사가 시편 23편이 아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요한 복음 14장 6절의 말씀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 선율의 작곡자가 그란트(David Grant)로 표기됐었는데, 이에 본래 작곡자인 얼바인의 자매가 수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즉 그녀는 얼바인이 작곡하고 화성을 붙이도록 요청하기 위해 악보를 그란트에게 보낸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따라 1929년에 나온 「북부 시편집」 새 판에는 작곡가를 얼바인으로 명시한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성가는 오늘날 서양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1947년 거행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공의 결혼식에서도 이 성가가 불렸다고 한다. 우리말 가사도 운율이 있는 시로 번역되었던 영어 시편 가사와 같은 구조로 이뤄져 있으며, 시편 23편에서 노래하고 있는 주님께 대한 의탁과 든든함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평화신문, 2016년 7월 17일, 이상철 신부(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 가톨릭 성가곡들은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www.catholic.or.kr)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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