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서울주보 음악칼럼] 성경 속 영웅도 녹여버리는 유혹의 노래
생상스,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청소년기 클래식 음악의 매력에 막 빠져들 무렵 베토벤은 저의 음악적 우상이었습니다. 어떤 음악가를 제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베토벤이라고 말했죠. 그러다 성인이 되어서, 특히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PD가 되어 음악을 고루 많이 듣게 된 다음부터는 누군가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가를 물어보면 참 곤란해집니다. 그 많은 작곡가들이 저마다의 개성과 장기를 가지고 있어서, 이 사람은 이래서 좋고 저 사람은 저래서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중에 그 매력을 알게 된 작곡가 중에 까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ëns, 1835~1921, 프랑스)가 첫손에 꼽힙니다. 올해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지요. 생상스는 세 살 무렵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작곡도 했던 신동이었습니다. 또 그의 작품은 모차르트가 그랬듯이 클래식의 거의 전 장르에 걸쳐져 있어서 사람들은 그를 ‘프랑스의 모차르트’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의 곡은 제일 잘 알려진 <동물의 사육제>에 나오는 ‘백조’처럼 부드럽고 우아한가 하면 교향곡 3번 <오르간>처럼 장중하고 화려하기도 합니다. 생상스의 작품 가운데 성경의 한 부분을 소재로 한 오페라가 있습니다. <삼손과 데릴라 Samson et Dalila>입니다. 삼손은 구약 성경의 판관기(13장~16장)에 등장하는 주님의 영이 깃든 이스라엘의 판관입니다. 모태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그는 주님께 강력한 힘을 얻었고, 그 힘으로 다곤 神을 숭상하는 필리스티아(블레셋)를 제압해 필리스티아인들의 복수의 대상이 된 존재입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호시탐탐 그를 칠 기회만 엿보고 있었죠. 그러다 마침내 삼손이 사랑에 빠진 필리스티아 여인 들릴라(데릴라)를 매수해 그녀에게 삼손의 힘의 원천을 알아내라고 합니다. 들릴라는 자신의 미모로 삼손을 유혹해서 그 힘의 원천을 알아내죠. 삼손은 자신의 위력이 바로 머리카락에서 나옴을 실토하고, 잠이 든 사이 머리카락을 다 깎이고 눈까지 뽑히고 맙니다. 이제 힘이 빠진 그는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붙잡혀 갖은 모욕을 당하죠. 하지만 다시 자라난 머리카락과 주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의 힘으로 그는 다곤 신전(神殿)을 무너뜨리면서 필리스티아를 멸망에 이르게 하고 죽음을 맞습니다. 이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수많은 그림의 소재가 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생상스는 이 성경의 이야기를 3막 오페라에 담았습니다. 특히 2막에서 팜므 파탈의 여주인공 들릴라가 부르는 유혹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는 아름답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생상스 음악의 부드럽고 매혹적인 개성이 그대로 드러나죠. 한번 들으면 그 매력에 빠져 즐겨 찾는 음악이 되고 맙니다. 우직하고 순정한 남자,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는 삼손에게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들릴라가 가슴이 터질 듯 한껏 애절하게 사랑을 갈구하며 부르는 유혹의 노래니만큼, 우리 또한 한번 듣고 이내 빠져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려요. 새벽 키스에 꽃송이가 열리듯이요. 사랑하는 그대여, 내 눈물을 마르게 하려거든 그대 음성을 다시 한번 들려줘요! 들릴라에게 영원히 돌아온다고 말해줘요. ……… 내 사랑에 응답해줘요. 나를 환희로 가득 채워줘요. ……….” 태생이 주님께 바쳐져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삼손 같은 인물도 일순간 한 여인에게 현혹되어 무너지고 마는데, 우리 범인(凡人)들은 오죽하랴… 하는 생각을 하며, 세상사 끊임없는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을 지켜나가는 하루하루를 살게 해주십사 기도드립니다. [2021년 5월 9일 부활 제6주일 서울주보 6-7면, 임주빈 모니카(KBS프로듀서,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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