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 (1) 통합을 향하는 교회음악
“교회음악의 다양한 이야기들 함께 나누겠습니다” - 독일 레겐스부르크 교회음악 대학교 합창단이 2015년 독일 필스호펜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에서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을 공연하는 장면. 이장규 신부 제공. ¡Buenos días! 안녕하세요, 저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라고 합니다. 2022년 새해 첫인사가 무척 낯설지요? 사실 저한테도 아직 많이 낯선 인사이기도 합니다. 저는 멀리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위 라바날에 있는 저희 베네딕도회 공동체의 초대로 지난 11월 스페인에 입국했고, 지난주부터는 스페인 최초의 대학이 있던 살라망카라는 멋진 옛 도시에 와서 예수회 신부님들과 함께 지내면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아직은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나이에(!) 새로운 언어를 하나 더 배우려니 조금은 힘에 부칩니다. 그래도 함께하는 예수회 공동체 신부님들이, 특히 할아버지 신부님들이 한 마디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저를 위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말을 걸어주시고, 말도 고쳐주고 하시니 힘을 얻고 다시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90살을 훌쩍 넘긴 한 할아버지 신부님이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희한하게도 이제 스페인어를 시작했다는데, 얘가 하는 말은 발음도 그렇고 악센트도 그렇고 또렷해서 알아듣기 참 좋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부분은 자신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음악을, 그것도 교회음악을 배웠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신부님께 이야기했습니다. “아마 내가 교회음악가이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성악을 배우면서 어떻게 발음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소리를 내야 하는지가 중요했거든요.” 네, 저는 독일 레겐스부르크 교회음악대학교에서 교회음악을 배웠습니다. 교회음악을 배운다는 것은, 음악으로 교회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운다는 것을 뜻합니다. 교회음악에는 그래서 특히 미사 전후로 연주하는 오르간 독주와 즉흥연주, 미사 반주 같은 실제 악기 연주와, 성악, 합창 지휘, 그레고리오 성가 등 실제적인 과목들이 포함됩니다. 게다가 교회음악가가 합창 지휘나 오르간 연주를 하면서 그때마다 자기 본당 상황에 맞게 써먹을 수 있도록 작곡과 음악 이론도 아주 자세하게 배웁니다. 본당 행사나 어린이, 청소년 미사를 위해서 재즈 반주나 피아노, 제3악기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기본적인 신학 지식과 전례도 교회음악에 포함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요즘 세상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것과 반대로, 교회음악은 늘 언제나 통합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아무튼 그래서 지역이나 본당마다 그리고 교회음악가 등급마다 차이는 있지만, 교회음악을 배운 본당 교회음악가는 기본적으로 오르가니스트와 합창지휘자, 그레고리오 성가 독창자 및 칸토르가 되어 전례음악을 모두 책임지는 본당 음악 감독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래서 교회음악을 배우는 친구들은 누구보다도 음악에 재능 있고, 또 전례에 대한 감각이 있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저는 간신히 입학을 해서, 졸업까지 간신히 해냈습니다. 당연히 수도원에서 배운 그레고리오 성가 말고는 음악이라는 것을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레겐스부르크 교회음악대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기까지 혼자 힘으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왜관수도원 공동체 형제들, 특히 수도원 성가대 형제들이 믿고 기다려 주었고, 유명한 안셀름 그륀 신부님이 사시는 독일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형제들이 독일 생활을 하는 내내 자기 공동체 형제인 양 저를 받아주었습니다. 레겐스부르크에서는 입학할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많은 친구들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받은 도움을 기억하고, 귀국해서는 공동체 형제들과 수도원을 찾는 많은 분들을 위해 아름다운 전례음악으로 봉사하려고 노력했는데, 아쉽게도 그 기간이 많이 짧았습니다. 게다가 지난 2년은 코로나19로 전례음악을 마음껏 펼칠 기회가 적어서 참 죄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선교사라는 새로운 삶이 제 앞에 펼쳐지게 되었고, 가장 기본이 되는 ‘노래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 말고는 어떤 다른 전례음악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기대와 걱정과 아쉬움이 모두 뒤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참 고맙게도 가톨릭신문사에서 제 아쉬운 마음을 알았는지, 지면을 통해서라도 여러분들과 어렵지 않은 내용으로(!) 교회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사라질 수도 있는 교회음악에 대한 저의 생각과 의견을 이 지면을 읽는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실 지난 3년간 저희 수도원에서 나오는 계간지 「분도」를 비롯해 부산가톨릭평화방송을 통해서 교회음악 이야기를 나누긴 했는데, 가끔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나 하고 반성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독자 여러분께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교회음악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궁금한 부분을 질문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시간, 수도 생활에 전념하는 시간 말고는 인터넷 세상의 다양한 곳에서 놀고(?) 있으니, 그런 곳을 찾아오셔서 물어봐 주셔도 좋습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그리고 음성 기반 플랫폼인 클럽 하우스와 음(mm)에서 모두 Athanasius Yi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답을 드리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하니, 바로 답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대답은 여기, 가톨릭신문을 통해서 드릴게요. 이메일도 환영입니다. athanasius.yi@gmail.com으로 문의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나 있을 질문들이 저한테는 잠시 숨을 돌리고 머리를 맑게 해주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질문들을 기다리며 다음 지면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가톨릭신문, 2022년 1월 9일,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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