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음악 칼럼] 십자가의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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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크리스티나 | 작성일2022-03-12 | 조회수2,227 | 추천수1 | |
월간 <빛> 3월 교회음악 칼럼 https://www.lightzine.co.kr/magazine.html?p=v&num=4500
프란츠 리스트 십자가의 길 Via Crucis
글. 여명진 크리스티나
▲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이젠하임 제단화 <십자가 처형>, 1515, 프랑스 콜마르 운터린덴 미술관
사순시기를 맞이하며 여느때 보다 조금 더 마음을 담아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순간을 14처로 나누어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기도입니다.
헝가리의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는 ‘십자가의 길(Via Crucis)’ 기도를 음악으로 담아냈습니다. 리스트는 ‘피아노의 신’, ‘피아노의 황제’라 불릴 만큼 뛰어난 기교를 지닌 피아니스트입니다. 천재적인 실력과 더불어 훤칠한 키, 잘생긴 외모로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얻으며 화려한 삶을 살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인생의 희로애락을 깊게 겪은 리스트는 삶의 후반으로 갈수록 종교에 빠져들게 됩니다. 수도생활을 하며 성직자로서의 삶을 살기도 했으며 종교적 주제와 색채를 지닌 곡들을 다수 작곡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그가 67세였던 1878년 로마에서 작곡을 시작해, 1년 뒤 부다페스트에서 완성하었으며, 혼성합창과 솔로, 오르간을 위한 작품입니다.
작품은 서곡과 십자가의 길 14처, 총 15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르간과 합창이 그레고리안 성가 ‘임금님 높은 깃발(Vexilla Regis)’의 선율을 노래하며 서곡은 장엄하게 시작합니다. 이 그레고리안 성가는 지금도 성무일도 중 주님수난성지주일 제1저녁기도부터 성목요일을 제외한 성금요일까지 매일 저녁기도의 찬미가로 불리고 있습니다.
뒤따르는 십자가의 길 14처 역시 합창, 오르간 솔로, 혹은 베이스 솔로등의 구성으로 수난의 길 기도에 음악적 효과를 더했습니다. 제6처 ‘성녀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 에서는 우리 귀에도 익숙한 성가 116번 <주 예수 바라보라>가 연주됩니다.
(좌) 가톨릭 성가 116 <주 예수 바라보라>, (우) 프란츠 리스트
리스트가 그려놓은 악보 위에서 십자가의 길을 걷다 보니, 예수님이 보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위해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흔들고, 입고 있던 겉옷을 내어 바닥에 깔았습니다. 요란스럽게 환호하며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기뻐하고 환호하며 웃음 짓는 군중들 사이에서 예수님은 나귀 위에서 앉아 예루살렘 도성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십니다.
이제 곧, 그들의 열광하던 환호성은 예수님을 향한 조롱과 멸시로 바뀌고, 나뭇가지를 흔드던 그 손은 수근거림과 비난의 손가락질이 되며, 겉옷을 내어깔던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두고 제비뽑기를 할 것이니 참담하고 슬픈 마음을 감출 수 없으셨겠지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걷는 그 길이 얼마나 멀고, 그 걸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걸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세상길에서, 우리 역시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발걸음이 무거워져 자꾸만 넘어집니다. 세상 사람들 사이에 숨어 예수님의 고난을 그저 모른채 지켜만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잊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역시 십자가의 길 위에서 세번이나 넘어지셨음을... 그러나 다시 일어섰고, 다시 걸으셨습니다. 그 걸음을 기억하게 하십시오. 힘겨웠으나 결연했던 그 발걸음을...
매번 다른 사연으로, 다른 이유로 마음이 산란해지고 넘어지겠지만, 넘어짐을 수치스러워 하지않고, 수십번, 수백번이고 다시 일어나게 하십시오. 멈추지 않고 걷게 하십시오.
그 어떠한 때에도 고통과 슬픔에 잠식되지 않고 우리가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신앙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순 시기, 십자가의 길 위에 흐르는 음악이 더 깊은 기도가 되길 바라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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