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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13: 바흐 칸타타 21번 저는 수많은 근심에 휩싸였나이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04 조회수2,037 추천수0

[전례 ·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 (13) 바흐 칸타타 21번 ‘저는 수많은 근심에 휩싸였나이다’


당신의 위로가 제 영혼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2018년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 Audimax 연주회장에서 존 엘리엇 가디너 경이 지휘한 바흐 칸타타 공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왜관 수도원 정문까지도 모두 걸어 잠근 채 각자 맡은 바 소임만 하고 나면 대화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독방생활을 한, 그야말로 수도승 생활에 전념하던 때입니다.

 

어차피 식사 시간의 침묵이야 익숙한 거라서 크게 달라진 건 없었는데, 그 넓은 성당에 손님도 없이 형제들이 넓게 퍼져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바치는 시간전례와 미사는 좀처럼 제대로 입을 맞추기가 힘들었습니다.

 

마침 그 몇 달 전에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하며 실험적으로 형제들과 함께 바치는 시간전례에 합창음악을 결합해서 우리 형제들과 합창에 관심 있는 분들 모두 재미있게 해 보았고, 합창단도 결성해보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게 멈춘 것만이 아니라 무언가 자리를 잡아가던 우리 전례도 한 번 멈추어 버리니, 다시 일상을 회복하더라도 우리가 전례나 전례음악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때를 대비해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로 평생교육원 강의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참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을 채우고 싶었습니다.

 

하루는 자료들을 정리하러 수도원 음악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수도원 음악도서관은 음악을 공부하면서 사 모았던 악보들과 음악 도서들, 독일 수도원들을 다니면서 기증받은 악보들, 독일과 호주 등지 은인들께 받은 악보들과 LP 및 CD 음반을 모아서 나중에 수도원을 방문하는 음악가들과 교류하기 위해 외부인들도 들어올 수 있는 곳에 마련한 곳입니다. 여기에는 제가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던 해에, 합창 음악 악보로 유명한 카루스출판사에서 오랫동안 준비해 출판한 바흐 칸타타 전집도 있는데, 마침 출간 첫 해 특가로 할인을 하길래, 제 휴가비를 탈탈 털어 이 전집을 마련했습니다.

 

아무튼 악보들을 정리하러 올라갔다가 바흐 전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날부터 칸타타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악보들 앞에 설명해 놓은 머리말과 칸타타를 설명해 놓은 알프레트 뒤르(Alfred Dürr) 의 책을 읽어보고, 다양한 연주자들의 음반도 찾아 들어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통주저음 반주도 연습했습니다. 물론 결국에는 기껏해야 40여 곡밖에 살펴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 곡 한 곡 정성을 들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 가운데 한 곡으로 바흐 칸타타 21번, ‘저는 수많은 근심에 휩싸였나이다’(Ich hatte viel Bekümmernis)가 있습니다. 베를린 주립도서관에 남아있는 원본 파트보 악보(D-B Mus.ms. Bach St 354)들을 묶은 표지를 보면, 1714년 삼위일체 축일 다음 세 번째 주일에 첫 공연을 했다고 바흐가 직접 메모해 놓았습니다. 29살 젊은 바흐가 바이마르 궁정 음악가로 일하던 때인데, 이 칸타타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들이 있지만 바이마르의 요한 에른스트 왕자가 중병에 걸려 요양을 떠날 때 이를 배웅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헨델(Händel)의 고향 할레(Halle)의 오르가니스트로 지원하면서 자기 기량을 뽐내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무튼 자기 작품에 꽤 엄격했던 바흐가 젊은 날 만들었던 칸타타를 나중에도 그대로 다시 사용한 경우가 꽤 드물었는데, 심지어 이 작품은 몇 차례의 수정 작업을 하면서까지 계속 보강한 걸 보니 꽤 마음에 들었던 작품인 것 같습니다. 물론 처음에 만들었던 작품은 지금처럼 설교 전 칸타타 1부와 설교 후 칸타타 2부로 이루어진 11곡, 그러니까 다른 칸타타의 두 배나 되는 길이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조성도 바흐가 수정 작업을 할 때마다 공연하던 교회 오르간의 조율음 기준으로 계속 바뀌었고, 칸타타 2부 핵심인 영혼과 예수님의 대화도 처음엔 테너와 베이스의 대화였다가 나중에 소프라노와 베이스의 대화로 바뀌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소프라노와 베이스의 대화가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작품의 첫 곡은 제1 바이올린이 ‘도’로 시작을 하면 거기에 오보에가 ‘레’로 마찰되는 소리를 얹습니다. 화음이 아니라 부딪치는 소리를 내면서 근심과 고통을 묘사하는 겁니다. 거기에 베이스 악기들은 마치 깊은 구렁 속으로 자꾸만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천천히 아래로 내려갑니다. 이 첫 곡 신포니아의 마지막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어보시면, ‘곡이 곧 끝나겠네’ 하다가도 ‘어, 아직 안 끝나네’ 하는 부분이 몇 차례 등장하는데, 근심, 고통, 슬픔을 보여주는 감7화음으로 상황이 나아질 듯 나아질 듯하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곡은 이 칸타타의 주제곡으로 ‘제 속에 수많은 걱정들이 쌓여 갈 제 당신의 위로가 제 영혼을 기쁘게 하였습니다’라는 시편 94,19 말씀을 노래합니다. 바흐는 이 곡을 시작하면서 ‘나/저는’(Ich)의 외침을 세 차례나 반복합니다. 요한 수난곡에서 ‘주님’하고 세 차례 외치던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해석하는 연주자들에 따라 이 부분을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어려운 상황을 말하기에 앞서, 나라는 존재를 하느님께 외치듯 알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반대로 어떻게 말씀을 건넬까 주저하면서 내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외치다가 보니 내 모습을 더 돌아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바흐가 이 곡을 수정하면서 함부르크에 일자리를 알아보게 되는데, 함부르크의 작곡가이자 유명한 음악 이론가였던 요한 마테존은 이 세 차례의 외침을 너무 과하다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저는 수많은 근심에 휩싸였나이다’라는 하느님께 올리는 말씀은 소프라노와 테너가 한음씩 높이면서 말 그대로 네 차례나 점점 크게 외칩니다. 그렇다면 그에 앞서 인간적으로 ‘나’라는 존재를 돌아보기에 세 차례가 과연 과했던 건가 궁금해집니다.

 

그밖에 이 칸타타 다섯 번째 곡, 아리아는 바다의 무서움을 전해줍니다. 지금과 다르게 바흐 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다는 무서운 곳, 배가 좌초되는 곳입니다. 설교 후 공연하는 일곱 번째 레치타티보와 여덟 번째 아리아는 영혼과 예수님이 노래로 대화를 합니다. 특히 영혼이 “맞다니까요”(Ja, ach ja)하는 부분과 예수님이 “아냐”(Nein, ach nein)하는 부분에 이어 영혼이 “아니에요. 당신은 저를 미워하셔요”하고 예수님이 “아냐. 난 너를 사랑한단다”하고 긍정과 부정이 뒤섞이면서 동시에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이 부분이 참 좋습니다. 루터교의 성체성사 교리, 내 안에 들어온 예수님과 영혼이 주고받는 이야기라고 해석하는 분도 계십니다.

 

마침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세 번째로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이 주일, 이 칸타타를 함께 즐기면서 내가 처한 어려움을 돌아보고, ‘나’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떠올리며 하느님께 나를 맡겼으면 합니다.

 

[가톨릭신문, 2022년 7월 3일,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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