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보는 성인] 성녀 체칠리아와 음악가 초기 교회 공통체의 교회음악은 사도 바오로의 선교 중심지였던 안티오키아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 분을 찬양하십시오,”<에베소서 5: 19>라고 가정생활 속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방편으로 음악을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교회의 공식적인 예배음악이 아닌 일상생활 속의 음악의 중요성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콜로새서 3:16>에서 다시 확인된다. 초대 교회음악은 악기 반주가 따르지 않는 성악만의 예배음악으로 연주되었다. 그 까닭은 악기가 사치스럽고 전통적으로 이교도의 제사의식에 사용되었으며, 분명하게 선포되어야 할 하느님의 말씀에 방해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악기 사용이 없는 성악만의 예배음악 전통은 오늘날까지 동방교회에서 지켜진다. 가톨릭의 음악의 주보 성인인 성녀 체칠리아(?~230년)가 이교도 남편과의 결혼식에서 악기로 연주되는 결혼식 음악을 들으면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음악을 떠올려 결혼식 음악을 부정했던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결혼 전부터 동정을 지키려고 맹세했던 성녀 체칠리아가 화려한 결혼식 음악에 감흥을 일으킬 수 없었던 것이다. 체칠리아는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동정 서원을 청하는 기도에 몰입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성녀 체칠리아의 일화는 그녀가 결혼식 오르간 소리에 맞춰서 노래를 부른 것으로 오해되기 시작했다. 라파엘로의 ‘성녀 체칠리아와 성인들’(1514)에서 체칠리아는 오르간을 연주하며 종교적 황홀경에 젖어 하늘을 우러러 노래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녀의 발밑에는 비올라를 비롯한 각종 악기들이 깔려있다. 그녀가 음악의 주보 성인으로 섬겨지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 16세기부터였다. 4세기 이후부터 그리스도교의 전파와 강화로 지역적으로 여러 종류의 전례음악이 있었다. 로마교회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서 그레고리 1세(590~604)는 다양한 전례음악을 정리하고 음악의 규정을 제정했는데 그 결과 오늘날 가톨릭 교회에서도 불리워지는 단성부의 라틴어 전례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가 성립된다, 다성음악은 9세기경부터 출현하여 오르간 반주음악이 교회에서 연주되었지만, 로마의 시스티나 교회만이 오르간 없는 무반주 음악을 끝까지 고수했다. 이러한 음악사의 추이로 보아 성녀 체칠리아가 음악의 주보 성인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민중들의 예술, 특히 음악에 대한 열정적 수용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오해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으나 성녀 체칠리아와 음악의 강력한 연관은 그 이후에 더욱 강화되어 그녀의 이름을 딴 예술학교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이 설립된다.(1565) 이 음악원 출신의 대표적 음악가는 조수미, 메조 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 엔니오 모리코네 등이 있다. 지휘자 정명훈은 한때 산타 체칠리아 관현악단을 이끌었다. 이들 음악가 중 우선 주목할 인물은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이다. 모리코네는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을 두 번 졸업했다. 1946년 트럼펫 전공으로 졸업한 후 작곡을 제대로 배우겠다고 결심해서 작곡과에 재입학해서 1954년 학위를 취득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작곡과 연주 활동을 이어간 그는 회고를 통해 자신 음악의 중심 모티브는 신앙심이었으며 가장 영향을 받은 음악은 그레고리오 성가라고 밝혔다. 또한 일생을 통해서 두 번 울었는데 하나는 영화 〈미션〉의 음악을 작곡할 때였고, 둘은 교황을 알현했을 때라고 회고했다. 이처럼 신앙심이 돈독한 모리코네가 마카로니 웨스턴의 음악으로 주목을 받았고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의 걸작을 산출했다는 것은 얼마간 아이러니한 느낌을 갖게 한다. 무참한 살육이 반복되는 영화에서 그의 음악은 황량하고 거칠고 쓸쓸한 분위기에서 무언가를 호소하는 애절함이 점철되어 있다. 다성부와 단성부의 교차에서 그레고리안 찬트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인간의 목소리가 최고의 음악재료라고 생각한 모리코네의 영화 음악에서 멜로디 라인은 호소력 짙은 목소리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 〈헤이트풀8〉에서도 이러한 그의 음악의 특징은 이어진다. 모리코네에게 아카데미 영화 음악상을 받게 한 〈헤이트풀8〉에서 저음 목관악기인 바순을 인간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등장시켜 영화의 어두침침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묘사한 것도 굳이 따지자면 그의 신앙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신앙심의 응축이 가장 잘 나타난 영화음악은 〈미션〉의 OST이다. <가브리엘의 테마>의 아련한 멜로디는 관악기 오보에로 성악의 효과를 누리게 한다. 18세기 예수회 선교사와 원주민간의 갈등과 화합의 역사를 다룬 이 영화에서 오보에의 청량한 음은 원주민들의 심금을 울려 선교사를 포용하게 한다. 이 음악은 뮤지컬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의 요청으로 가사를 붙여 <넬라 판타지아>의 성악곡으로 대성공을 거둔다. 또한 합창곡 <지상에서도 천국에서와 같이>는 토속적인 봉고 리듬과 클래식 화성이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두가지 선율의 테마로 엄숙하고 경건하게 연주된다. 20세기판 그레고리오 성가가 발현하는 감성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모리코네는 이 음악을 작곡하면서 신의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가 작곡한 <시네마 천국>의 <사랑의 테마>를 노래한 안드레아 보첼리 음악에서도 <넬라 판타지아>의 신앙심의 발로를 느낄 수 있다. 2020년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지병으로 사망한 그는 죽는 순간까지 경건한 신앙심을 견지했다. 그에게 있지도 않은 “산타 체칠리아 영화 음악상”이 수여되어야 한다는 바람이 결코 헛된 망상이 아닐 것이다. 그는 결코 평범한 대중음악가가 아니었다. 프랑스의 작곡가 구노(1818~1893)는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성 세실리아를 위한 장엄미사>(1855)를 작곡했다. 생-상은 이 곡이 “19세기 후반 프랑스 음악의 대표작”이라고 격찬한 바 있다. 구노는 <아베 마리아>의 작곡가로 유명할 만큼 신앙심이 투철한 음악가였다. 바흐의 <평균율 글라비어곡집 1부 전주곡>과 <푸가1번 C장조>의 일부분을 편곡한 <아베 마리아>는 세속적인 성가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아베 마리아>는 조선에 파견된 프랑스 신부의 순교한 영혼을 달래기 위해 구노가 작곡한 곡이라서, 우리 교회사와 깊은 연관을 가진 작품이다. 구노는 한때 사제가 되려고 결심했던 독신자로서 가톨릭 음악의 주보 성인 세실리아를 위한 장엄 미사를 통해 종교음악의 새로운 경지를 열려고 노력했다. “음악으로 끝없는 신앙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 더구나 나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으로서는.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구노는 고백했다. 프랑스적 감수성과 장엄한 기풍 속에 서정미가 녹아 있는 이 작품은 성령 강림절에 곳곳에서 연주되는 걸작이다. 성녀 체칠리아는 신앙심을 일깨우고 많은 음악가에게 번득이는 영감과 풍성한 상상력의 원천을 제공하는 음악의 주보 성인이다. [평신도, 2022년 통권 제72호, 전영태(중앙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