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화성적?):톤의 중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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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형석 | 작성일2001-04-16 | 조회수809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이 제목은 제목이 얘기해 주듯이 작곡기법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과연 어떤 곡이 화성적인가? 으뜸화음, 딸림화음, 버금딸림화음을 주로하에 그에 따란 변조와 비화성음을 적절히 배치한 고전 화성학 중심의 곡?....
현대에 이르러서, 예전에 부터 내려오는 화성이 존재하는지...무조성 = 무질서?
전통화성학이 소나타 형식이나, 또는 푸가형식등의 큰 전제에 달았다면, 또는 르네상스가 사성대위를 따랐다면, 후기의 낭만음악의 바그너는 화성의 파괴자인지? 아니면, 화성의 완성가인지?
바그너의 화성학적 모티브를 극복한 데뷰시는 또 어떤 이인가? 데뷰시는 바그너의 화성학을 무시하면서도(전통화성학) 새롭게 화성의 음가를 발견했는데, 이는 화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진지하게 화성학에 근거하여 작곡했다기 보다, ’소리는 소리로 말한다’ 식의 화성운용, 리듬운용이죠..그래서, 느낌에 근거한 인상주의란걸 만들었지만... 그러니, 우리도 진지하게 분석해가면서, 연주할 수도 있고, 그냥 소리가는대로 재즈처럼(실제 데뷰시는 재즈에 관심이 많았슴, 물론 바흐는 재즈의 아버지; 그의 숭엄한 코랄이 재즈적으로 작곡된 것을 연주해 본적이 한 두어번 있습니다.) 들을 수도 있구요.
그러면 현대에 이르러 많은 무조성의 음렬 작곡가는 진짜 무조(중심없는 무질서)인가? 저는 천만에 말씀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물론 메시앙이나, 쉔베르크같은 대가들이 12음기법과 음렬음악을 열었지만, 그들은 우리가 지겹게 들어 왔던 조성을 포기한?(아니 극복한) 작곡가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저의 사견)
음렬주의가 많은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다보니, 청중과의 컨센서스와 극심한 분리, 결과적으로 청중을 잃은 꼴이 되었는데, 과연 무조음악은 무질서하고, 진짜 조성이 없는지?
저는 개인적으로 음악은 20세기에 들어서 많은 도약을 했다고 봅니다. 그 것은 모든 현대예술, 현대과학, 현대문학,현대공학이 그러한듯이(적어도 공학과 과학이 발달한 것은 부인하지 않겠지요?) 그런데, 외면을 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공학과 과학도 너무나 전문화 된 나머지 아는 사람만 알고, 자세한 걸 모르는 건 마찬가지인데, 실용성을 갖다보니, 공학과 과학은 인정받는데, 현대예술, 현대문학등은 찬밥...
현대음악은 대부분이 ’조성음악’입니다.. 여기서 조성음악이라고 제가 부르는 이유는 전통화성학이 말하는 조성성을 얘기하는 것이(이미 극복한 개념을 창조를 즐기는 작곡가에게 흥미가 있지는 않겠지요?)라기 보다 새로운 음의 중심을 말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떤이는 음정의 과학적인 면을 음을 통합하는 중심으로 보고, 또 어떤 이는 음의 색채, 즉 사운드 자체를 음을 통합하는 중심으로 보고, 또 어떤 이는 수학적인 관계(보에티우스, 피타고라스를 연상시키는 제나키스?)를 음의 통합하는 중심으로 보고 등등...문제라면,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서 생긴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나 많은 훌륭한 작곡적 소스가 쏟아져 나오다 보니, 정작 작곡가들이 따라가야할 도그마가 너무 많아서 생긴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음악의 성질은 예술이고, 과학이고, 또 정련된 것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현대음악은 우울하고, 전위적인 면들이 비춰지는데, 이는 음정의 사용에서, 예전에 평균율발견에서 비롯한 화성의 사용에서 새로운 것들로 흥미를 옮기다 보니, 생기는 일이라 봅니다. 듣기 힘든 센세이셔널한 작곡가(저에게 있어선 존 케이지)도 있지만 서두요. 가령 르네의 그림을 과연 똑같이 다시 그릴 필요가 있을지?... 가령 파사칼리아를 작곡한다해도, 바흐가 작곡한 방식대로 화성과 기법을 똑같이 쓰는 작곡가는 별로 없겠죠? 파사칼리아의 곡의 시스템적 발상만을 취하지, 그 이상은 별반 흥미를 두지 않으리라 봅니다. 물론 음악이론가와 음악사가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겠지만서요. 화성학은 화성학을 버리기위해 공부하는것이 현대작곡가들의 한 모습이라고 봅니다.
제가 주장하는 하는 것은 어떻게 톤의 중심과 가톨릭과 연결시키냐는 것입니다. 거장 메시앙은 이런 점에 입각해서, 가톨릭적 조화를 이루는 곡들에 대해 많은 시도를 했다고 봅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작곡한 현악4중주를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영성적인지(적어도 제게 있어선) 느낄 수 있으리라 봅니다.그리고, 음정의 변화 사용이 대칭적으로 조화를 이루고자 한 적이 엿보입니다. 현대의 가톨릭곡들이 충분히 이 시대의 풍요로운 자료와 음의 발견들을 이용하면서도, 대중과 친숙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 것이 반드시 500년 이전의 기법일 필요는 없습니다. 복잡한 레이어에서도, 전체를 통합하는 톤의 중심을 발견하는 것이죠...(윽 어렵네요!) 그레고리안의 선율을 통합의 모티브로 하여 현대의 음정관계를 이용한 아르보페르트가 현재로선 참으로 돗보입니다.(이것 역시 저의 사견).
많은 성가 가족님들! 현대 성음악에도 관심을 갖읍시다... :) 가장 쉬운 방법은 듣기겠죠 :)
시간에 쫓기다 보니, 음악과 자꾸 멀어지고, 심지어는 가톨릭 성음악에 신경을 잘 못쓰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만 나오는 저의 작은 푸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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