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 게시판

제목 황사영의 눈물인가,땀방울인가.
작성자조남진 쪽지 캡슐 작성일2001-08-17 조회수1,260 추천수3 반대(0) 신고

여러분 안녕하세요?

 

 더위가 심해서 견디기 힘들지만 우리의 더위쯤은  비교가 안될 일이 2백년전에 일어났던 것 아세요?

올해가 우리 교회사의 4대박해중에서 가장 첫번째 대규모박해인 신유박해가 일어난지 2백년이 된 해이지요.

 

1784년 북경에 가서 이승훈이 세례를 받고 온 후 16,7년동안 천주교는 널리 퍼졌고 천주교의 확산에 위기를 느낀 대왕대비 김씨는 신유년(1801)  2월2일부터 천주교도를 모조리 잡아 죽이라는  영을 전국에 내렸답니다. 그때 서울과 충청도, 전라도등에서  1백 수십명에 달하는 신자들이 고귀한 피를 흘려 순교를 하였답니다. " 다시는 안 믿겠다"고 말 한마디하면 살려줄텐데,  부나비처럼 스스로 목숨을 던져 하느님을 증거하며 죽어간 것이지요.

 

  그 신유박해 2백주년을 맞아  서울대교구에서는 갖가지 행사를 하며 절두산 순교자 기념박물관에서는 귀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요. 이 전시회에는 동정부부로 살다 1801년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이순희 누갈다의 편지와 몸에 지녔던 십자가등 성상,  1801년 순교한 정약종이 쓴 첫 본격적인 한글 교리서라 할  ’주교요지’ 책과 정약현,정약전, 정약종, 정약용등 쟁쟁한 근세사의 인물 정씨네  일가의 낙관과 각종 문인화, 그리고   로마에서부터 75년만에 돌아온 황사영백서가 두달동안 특별  전시가 되고있는 것이죠.

 

우리가 특히 관심을 갖게되는 것은  황사영백서이지요. 백서를 쓴 황사영은  정약용의 형 정약현의 사위로 일찌기 사마시에 합격, 진사가 되었대요.  정조는 그의 뛰어난 문재를 보고 특별히 불러 종이 2권, 붓3자루, 먹2장을 선물로 내렸답니다. 그리고  손목을 잡으며 " 네가  20세가 되거든 나를 만나러 오너라.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네게 일을 시키고 싶다"고 해서  그는 손목을 흰 명주로 감고 다녔다지요. 즉 상당히 장래가 총망되는 젊은이였음을 알 수있지요. 그런 그가  처 고모부인 이승훈 (정약전의 여동생의 남편)에게서  책을 빌려읽고  천주교를 알게되어 제사를 지내지 않고, 그야말로 사대부로서 보장되었던 입신출세의  삶을 팽개치고 천주학을 섬기게 되는것이죠.그는 신심서적을 필사,   숨어 다니며 포교를 하는 한편 충북 제천군의 배론이라는 곳의 토굴에 숨어들어 가 목숨을 걸고 로마교황청으로 가는 글을 씁니다. 조선천주교회가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고,하느님을 전함으로써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있는 가를 .. 그리고 어떻게 박해를 당했으며 장차  박해를 당하지 않게  국제 외교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줄 것을 호소합니다.  그때 쓴 깨알같은 한문 1만3천8백여자의 글들이 명주천(가로62, 세로  38센티미터) 에 쓰여진 황사영백서입니다. 이 백서는 결국 전달되 지못하고 맙니다만..." 원문에는  군데군데 물기가  번져 있는것이 눈에 띕니다. "... 황사영의 눈물인지, 땀인지 가늠할길 없지만  ....  우리를 묵상케 하는 대목이지요"(이 전시회를 준비한 고려대 사학과 조광교수의 말)

 

"또한  동정부부 이순희 누갈다가 지녔던 십자가는  5센티가 좀 넘을까 하는것인데 십자가의 예수님상이  반질반질하게  달아있어 그가 얼마나 독특한 방법으로 하느님을 사랑했는지를 알수있게 합니다." (조광교수의 말) .

이순이는 동정을 지키고 싶어하지만 그 당시의 사회통념상 여성이 혼인을 않고 지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호남의 사도로 불린 유항검의 첫째 아들 유중철 요한과  혼인하지만  순결을  지키며 오직 신앙을 의지해  남매로 살아갈 것을 약속합니다.그러나  마귀의 수많은  유혹을 받아 약속을 깰뻔한적도 있었으며 그럴때마다   예수십자가상은 그들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힘 ’이었것 같습니다.

 

이순이 누갈다의 기도로 닳아  ’반질반질한 십자가’ 역시 우리에게 묵상을 하게 하는 단초가 됩니다.

...

 

한국천주교회는  103위 성인을 냈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103위 성인은 한국교회가 거저 얻은것이라는 뒤늦은 자각도 있습니다. 파리외방선교회등의 활약으로 성인이 쉽게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서울대교구는  이번의 순교자유물전시회를 비롯(10월15일까지 ), 9월16일 서울동대문축구장에서 신유박해2백주년 기념미사를 합니다.  이것은 시성시복 되지못한 신유박해의 순교자들을 기리고 그들에게  합당한 자리매김을 드리기 위한 우리의 자존적인 행사입니다.  기해(1838-성인 70위 탄생),병오(1846-성인9위 탄생), 병인박해(1866-성인24위 탄생)로 인한 성인성녀와 희생자들이 나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 그리스도인의 씨앗이 된  이들에게  마땅히 존경과 사랑을 드려야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성인 정하상이나 정정혜 엘리사벳은  신유박해 순교자 정약종의 아들과 딸입니다. 30여년후에 순교한  아들과 딸,부인은  성인품에 올랐는데  먼저 순교한 아버지는 성인이 못 되었다는것은 우리 전통의 효 개념이나 정서상으로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또 초기교회의 길잡이 역할을 한 중국인 주문모 신부, 우리나라 최초의 총회장 최창현, 남성못잖은 대활약을한 최초의 여성 총회장 강완숙등... 뛰어난 순교자들의  수많은 행적을 알리고 우리 힘으로 시성시복되도록 힘써야 할 때입니다.

 

 선교 3세기가 시작되었는데  왜 자꾸 옛 역사를 들추고 있느냐 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뿌리를 알고 한국교회의 전통인 순교자영성을 푸르게 가꿈으로서 한국 교회가 진정 이 땅에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도 이 작업은 추진 되어야합니다.

 순교자의 향기 - 유물 전시회및 9월16일의 동대문운동장에서의 신유박해 2백주년 신앙대회에 우리 모두의  관심과 기도를 모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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