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음악이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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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기 | 작성일2003-09-04 | 조회수647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그리스도교가 로마 황제 콘스탄티노로부터 최초의 공식 인정을 받고(313년) 그 후 국교로까지 승격되고(381년) 난 후, 이제부터 폐쇠적이고 단절되었으며 숨죽이며 살아야했던 땅 밑의 지하교회라는 처지에서 땅 위로 당당히 올라오게 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졌던 성찬예배 나 미사전례는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이제는 소리 높여 기도를 바치고 성가를 부를 수 있었던 그 모습은 상상이 간다.
하지만 300여년 동안 그리스도교 종교에 대한 로마 황제의 박해로 인하여, 지하로 숨어서 신자들만이 모인 자신들만의 전례와 박해가 좀 덜했던 다른 나라의 전례들과 교회의 통제권에서 벗어나있던 나라에서 전해졌던 전례 각기 다른 전례에서 오는 이질감을 어떻게 통일 시켜야 하는가가 당시의 교회의 수장들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였을 것이다. 더불어 이교도들의 예배음악에 사용되었던 음악이 그리스도교 전례안에 숨어들어온 것을 가려내기 위한 노력이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된다.
그리스도교에서 처음으로 쓰여진 찬미가들은 단지 유대교 형식에만 합당하다면 창작 작품에 대단한 자유를 허용했다. 이로인하여 세속적인 멜로디에 Text만 바꾸는 성가들이 생겨났고 다른 이교도 신들에게 바쳐졌던 노래들이 여과없이 받아들이게 된다.이런곡들은 춤과함께 불려지거나 그 지방의 고유 악기반주에 불려지던 곡들이 상당했다. 이교도들의 시적인 이런 찬미가의 형식은 전례 안에서 특별히 보급되었다. 빠른 속도로 이형식이 널리 알려지고 사용하게되자, 교회는 위험을 나타냈다 . 그것은 예배 안에서 찬미가의 역할이 압도적인 역할에 대해 어쩌면 이교도들의 사상이 유입될 수 있었다. 이에 대하여 553년 콘스탄 공의회는 모든 찬미가를 규정한다.
일찍이 그리스도교의 교부인 성 아우그티노는(St. Augustinus 354~430) 전례에 사용할 수 있는 거룩한 교회음악에 대하여 정의 하면서 세 가지 요건을 제시 한 바 있다. 즉 "음악을 받을 대상이 하느님이어야 하고, 수단은 입으로 하는 노래이어야 하며, 내용은 찬미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요한 크리소스톰(Chrysostomus)은 "좋은 음악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함께 하시고, 나쁜 음악이 있는 곳에 악마가 함께 한다"는 말은 여전한 진리의 말로 여겨진다.
거룩하고 엄숙한 전례안에서 음악이 선별되어 쓰여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전례는 하느님께 드리는 하느님 백성의 최고의 흠숭행위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요구하고 있는 전례음악의 첫째 조건이 ’모든 세속성이 제거되고 신성해야 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를 잘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신성하다고 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선별되어 이어져 내려오는 성가처럼 전례만을 위한 자격 조건이 갖추어진 것을 말하며, 축성과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초세기 때부터 교회는 전례음악의 신성함을 지켜 오면서 우상이나, 혹은 단순한 세속적인 허영심 같은 것으로부터 음악을 보호해 왔다.
그래서 트리엔트 공의회는 22번째 회기의 법전에서 "교회는 악기 소리든 노래 소리든 어떤 불순하고 음탕한 것이 섞여있는 세속적인 모든 종류의 것을 제거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집은 언약한 대로 진정한 기도의 집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한다. 즉, 교회는 전례음악에 대해 더 직접적이고 명백하게 세속적인 어떤 감염으로부터 보호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참된 예술성이 결여된 속된 음악을 전례에 도입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무조건 쉽게 전례음악에 접근시키려는 유혹을 버려야 한다. 전례음악은 하느님의 더없는 완전함을 드러내고 가능하면 그분을 닮아가는 임무를 지녔기 때문이다.
전례안에서 음악은 단순히 전례의 한부분을 차지하여 ’겸손한 시녀’`거룩한 종`의 역할을 하여야 하며, 음악을 우선으로 내세워 전례가 부차적인 것처럼 느껴지게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교회는 전례안에서 자극적인 소리를 가진 악기나 세속적인 발성으로 노래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또한 전례안에서 음악은 실험의 영역에서 봉사할 수 없으며, 복잡하거나 난해한 음악을 수용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전례음악은 신자들이 음악을 통해 하느님 신비에로 들어가도록 도와주고 이것이 신자들에 의해 완전히 받아들여지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연주하고 있는 오르간이나 성가곡들은 신자들로 하여금 듣고 함께 노래하면서 소리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어 기도할 수 있도록 신자들을 도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전례안에 새롭고 충돌적인 음악이 쓰여지는 것을 조심성 있게 제한 하였다.
그레고리오 교황님의 노고를 본받아야 할 시기이다. 교회의 찬미가, 전례음악을 통일시키시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세속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시려는 그 노력말이다. 그 분이 편집한 전례음악은 교회가 세속의 일부가 되어가는 일종의 장으로부터 보호하심아닌가? 교회는 콘서트 홀이 아니다. 전례성가는 전례성가일뿐 , 그래서 전례성가는 전례성가 다워야 하지 않을까??? 세속의 멜로디에 말씀을 담는다고 마치 세례를 받으면 새로운 사람으로 하느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성가로 둔갑되는가 그렇게 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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