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5221]말씀대로추적했으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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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종설 | 작성일2004-04-07 | 조회수721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공개된 자료를 탐색해 보았습니다만
큰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대구 [유스티노]신학교에서 수학하신것과 간략한 약력으로
1923년 5월 26일 서품자 2인 서정도(徐廷道) 벨라도 (경북 대구 출신) 부산진, 유스티노신학교 교수, 안동, 고성, 통영, 대구교구 주교좌본당 겸 부주교, 문산, 함양, 화원, 대구교구 총대리, 교구장서리, 남산, 경산 등 역임 (1964년 6월 21일 선종)
신학생 시절의 사진
1922년 유스티노 신학교 시절
이종필(마지아), 서정도(벨라도), 이필경(안드레아) 김영제(요한), 이경만(요한), 정수길(요셉)
어떤 분인지는 모르고요 최 교수님이 예전에 말씀 하셨듯이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매야 보배"라고 했습니다만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데 이문근 신부님 처럼 뚜렸한 증거자료?가 안 보이니 장님 코끼리 몸 더듬고 느낌 표현하는 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꿰맬 구슬이 있어야 뭐가 되는데!
혹 부산 교회사연구소에(1999. 5-20쪽) "한국 가톨릭 樂隊연구." 뭐가 있을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성음악 감독이신 윤용선 신부께서 파악하고 계실지 알수 없네요.
그리고 "무변해상"은 Franch Melody로 54년 책엔 표기 되었더군요. 미국 피오10세 성가집의 성모 찬가등을 살펴 보았는데 그곡을 못 찾아냈습니다.
참고로 "한국 가톨릭 樂隊연구."몇 귀절 전재 합니다.
" _____. "한국 가톨릭 樂隊연구." 부산: 교회사연구소, 1999. 5-20쪽. 19세기 말부터 일제시대까지 한국교회음악의 중심역할을 한 것은 악대라고 주장, 근대 교회음악에서 악대가 차지했던 역할과 비중을 높이 평가하였다. 가톨릭 악대는 전례와 각종행사, 음악회 등에 출연하면서 종교의식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고 대외적으로는 전교의 효과를 거두었으며, 서정도·이문근신부 같은 교회음악인을 배출하는 창구가 되었다. 가톨릭교회음악 논문과 저서들 가운데 악대에 집중적인 최초의 고찰이다. 1. 들어가는 말 2. 한국 가톨릭악대의 형성(수용·구성·활동) 3. 맺는 말로 구성되어있다. 하성래. "정약전의 십계명가와 이벽의 천주공경가." {전망} 102, 광주: 광주가톨릭대학, 1973. 21-23쪽. 수많은 박해에도 살아남은 천주교회 창건기의 두 작품을 소개한다. ’십계명가’는 서학수용의 과정에서 구약의 십계명을 차례로 노래하고 있으며, ’천주공경가’는 한국 천주교회의 개척자 이벽의 천주교 신앙과 사상을 직접 살필 수 있는 유일한 문헌이다. _____. "김낙호의 자신책가 소고 1,2." {사목} 36-37,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1974-1975. 저자가 자신의 신앙생활을 반성하며 꾸짖는 4·4조 172구의 긴 천주가사이다. 내용상 4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단락은 50평생 자신의 신앙생활을 반성하며, 2단락은 조석으로 자신의 신앙생활이 깊지 않음을 뉘우치며, 3단락은 천주께 드리는 자신의 묵상기도이고, 4단락은 성찰결과 두려움과 죽음을 예비한다. 1912년에 창작되었고 김동옥본에 실려있다. _____. "김기호의 성당가 1,2,3,4." {사목} 39,41-43,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1975-1976. 1898년 명동성당 낙성식을 보고 그 기쁨을 노래한 천주가사이다. 11단락의 내용으로 나누어지며, 1903년 필사본으로서 홍방지거의 가첩 속에 전한다."
안드레아 교수님의 건강과 하시는 사업의 번영을 바라며 지난 서운함과 결례는 잊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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