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서정도 벨라도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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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헌 | 작성일2004-04-07 | 조회수989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한국 가톨릭 교회 성가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읽고 바탕으로 삼아야 할 자료는 장안숙수녀 (대구 샬트르바오로회 수녀, 현 대구 효성초등학교 교장)가 1975년 11월에 계명대학 교육대학원 졸업 석사논문으로 제출하신 ’한국 카톨릭 성가의 역사적 변천에 관한 연구’ (지도 김진균박사) 이다. 몇몇 분들이 한국 가톨릭 성가집의 변쳔사에 대해 가끔 말하고 있지만 거의 모두가 이름만 밝히지 않을 뿐 장수녀님의 논문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수녀님의 논문 중 틀린 내용까지도 그대로 인용되는 것을 보아서...) 어쨌든 이 논문은 최양업신부님의 천주가사에서부터 현존하는 한국 교회의 가장 오래된 성가집인 1924년판 ’죠선어 성가집’ 1936년에 출판된 대구 교구의 ’성가집’ 그리고 1938년에 출판된 함흥교구 ’카톨릭 성가집’의 성가들의 출처를 비교적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이 논문 60쪽에서부터 1936년과 1957년 대구 교구에서 출판한 성가집에 수록된 성가의 출처와 분류를 시도하면서 수녀님께서는 서 정도 베르나르도 신부님의 곡을 소개하고 있다.
논문 84쪽에 나타나있는 수녀님의 글을 소개한다. "1917년 (신부님께서는) 유스티노 신학교(대구) 대학과에 입학하여 1920년까지 대개 작사 작곡을 해서 신학교에서 노래했는데 음악 공부는 프랑스인 송 스테파노(덕망)신부에게 베웠고, 그 이후 역시 프랑스인으로 신학교 교사였던 백 레날도신부에게 음악을 배웠는데 신학교에서도 음악에 우수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서정도신부가 신부되던 해가 1923년 5월 26일인데 그때 22세(23세)였고 벌써 그 이전에 작곡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유스티노 신학교 교가도 서신부의 작곡인데 지금은 불리지 않는다. ...."
계속해서 93쪽에 소개된 글이다. "1917 - 1920년에 작곡 작사한 성가라 하면 한국인이 작곡한 것은 처음이 되리라 생각된다. 그 당시 모두 외국의 곡을 번역해서 불렀고 또 미사에는 Gregorian을 불렀음으로 서정도신부는 한국성가곡의 시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우리나라 최초의 작곡자인 홍난파의 초기 작품 ’봉선화’가 1920년의 작품인 것에 비해 서신부는 그 이전에 신학교에서 작곡을 했고 그것이 불리었다는 점으로 보아 한국인이 국어 가사로써 작곡한 것은 처음일 것이다."
-------------------------------------------------------- 간단하게 수녀님의 논문만 소개합니다. 내일부터는 성삼일. 이 문제에 메달릴 시간이 없는 것이 죄송합니다. 제가 가진 성가집을 잠깐 살펴본 결과를 소개합니다. 우리 성가 가족들이 서정도신부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셨으면 하고요....
1957년 천주교 대구 성경학원에서 발행한 ’가톨릭성가집’은 서정도신부님 자신이 감수하신 책으로 신부님은 당신이 작곡하신 7곡, 작사 편곡하신 16곡, 그리고 작사하신 6곡, 역사하신 2곡을 포함시키고 계십니다. 서 정도 신부님께서 작사하신 것 중 우리가 가장 쉽게 기억할 수 있는 곡으로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가톨릭 성가’ 500번에 수록된 ’평화의 하느님’을 손 꼽을 수 있겠습니다. ’천주’라는 가사를 새 성가집에서는 ’하느님’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께서 작사, 작곡하신 곡으로는 ’가톨릭 성가’ 73번에 수록된 ’만민의 왕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우리가 잘 부르는 이 곡을 신부님께서는 1957년 성가집 102번에 ’예수 왕’이라는 곡명으로 실으셨고, 이 노래를 예수 성심노래로 분류하셨습니다.
장안숙 수녀님의 논문에서 문제가 되고 고증할 부분도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녀님의 논문은 우리 교회 음악의 변천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성가 가족들도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간곡히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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