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레고리오성가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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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병철 | 작성일2004-09-11 | 조회수771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그레고리오성가 2 그레고리오성가 1에서의 이야기는 고대 희랍(히브리)을 중심으로 한 동방문화(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비잔틴 문화로 분류) 속에서의 그레고리오성가의 형성기에 대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작은 나라이지만 고대 희랍(그리이스)은 서양사 최초의 거대한 문명을 이룩했을 뿐 아니라, 천하무적의 최강국 에짚트를 이겼고, 동서로 약진 하여 지금의 이란, 이락, 이스라엘, 터키 등 중동 제국과, 루마니아, 유고, 슬로바키아 등 아드리아 연안국들과 도서, 에게해 연안국인 마케도니아(영문 표기로 매세도니아라고도 함), 그리고 아랍권의 여러 나라들 등 광활한 지역을 장악했다. 유태교, 이슬람, 모슬렘 등을 위시하여 여러가지 형태의 다신교들이 혼재해 있던 이 넓은 천하를 통일하고 지배한 세력은 그리이스의 도리아족(도리아 지방에 살던)이었다. 에짚트의 신들은 초인적 상징물로 표현 되었다. 스핑크스, 큰 바위, 해, 달 등이 그 예들이다. 이에 반해 고대 그리이스인들은 신들을 사람의 형상으로 바꿔놓은 것이 가장 괄목할 사건이었다. 태양신 아폴로라든가 술의 신, 음악의 신 등 모든 신들이 각기 그 형태에 걸맞게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신이 인간으로 그 려지게 된 것은 이것이 최초의 일이었으며 그 이후 역사에 나타난 거의 모든 신들은 사람의 형태를 취한 형상 으로 등장하고 있다. 수 많은 종족, 종교들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아마도 고대 그리이스 제국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도리아족은 바로 이웃이며 막강하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는데 힘을 함께 했던 프리기아족 (프리기아 지방에 살던)과 리디아족 등과의 갈등이 심각한 골치거리였다. 가장 높은 지배 계층이었던 도리아 족과 그 바로 밑에서 최고의 위치를 넘보는 프리기아족과 리디아족의 추격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갈등을 해 소하는 우회적 수단으로 도리아족은 대 석학들의 학문을 이용하게 된다. 도리아족이 배출해 낸 석학들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탈레스 등 철학의 창시자들 모두라 하겠다. 이들 은 한결같이 도리아족의 우월론을 간접적으로 서술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공화국론"에서 '국가의 지도자 의 자질은 도리아 음악으로 인격을 도야하는 최후의 과정이 필수 조건' 이라 했고 '리디아 음악은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감정적이어서 국가 지도자로서 거기에 몰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 라는 논리로 우회적 견제의 뜻을 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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