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John 성당
BACH 팀은 연간 두세 차례 또는 그 이상의 합창단 연주와 추가로 몇 차례의 소규모 공연을 하는데, 그 장소는 주로 이 지역의 여러 성당과 교회들이다. 가끔은 대학 연주홀에서 하기도 하고, 소규모 공연은 다운타운("읍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의 자그마한 미술 갤러리에서 자주 한다.
어찌 보면 학교 단체도 아니고 교회 단체도 아니니까 연주장소를 구하기가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바꿔서 보면 바로크 합창 전문이라 당연히 종교음악을 많이 연주하게 되니까 성당과 교회에서 장소를 제공하는 것도 어울리고, 또 현직 합창지휘 교수인 지휘자를 포함해서 학교 사람들이 많으니까 학교에서 할 수도 있는 것이지 싶다. 어느 쪽이든 사람들 생각하기 나름.
지난해 3월 바흐 b 단조미사 공연에 이어 이번 3월 공연도 이곳 캠퍼스 사목을 위한 성당인 St. John's Chapel(성 요한성당)에서 열렸다. 내가 미국에 와서 처음 미사에 참례했던 곳이기도 하다. 뒤쪽 2층에 성가대석과 3단짜리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이 날 연주에서는 이 오르간 대신 앞쪽에 작은 포지티브 오르간을 가져와서 사용했다.
St. John 성당 (주일미사 후의 모습. 2006. 10. 15.)
절충형 연주진의 고음악 연주
지휘자는 말했듯이 이곳 음대의 Chester Alwes, 합창지휘 전공이면서 음악학자의 성격도 가졌고 작곡도 가끔 하는 것 같다. 독창진은 여기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소프라노 Sherezade Panthaki, 초청해 온 카운터테너 Joe Carter, 그리고 이곳 음대 안팎의 사람들로 꾸렸다. 비전공인 듯 보이는 독창자도 눈에 띄었다. 독창진도 여러모로 "절충형" 인 모양이다.
고정출연자인 Panthaki는 이 동네의 자랑이라고나 할까, 특히 고음악을 전문으로 하면서 비브라토 없는 맑은 음색과 기막힌 테크닉을 펼쳐 내는 것이, 내가 열렬하게 좋아하는 엠마 커크비(Emma Kirkby)를 연상시킬 정도이다. 이 날도 Carter와 더불어서 단연 돋보였다. 나머지도 나름대로 좋은 모습이었는데, 테너 솔로들 중에는 오페라 버릇을 못 버린 친구도 있었다. 이 곡이 꽤 극적인 모습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친구 노래는 낭만시대 드라마틱 오페라를 하는 느낌이 나서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메아리를 노래한 비전공자의 소리가 비록 약하기는 해도 음악에 더 어울린 듯 하다. 한편 그런 메아리 부분 등을 성당 2층 같은 데서 연주하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지만, 모두 무대에서 노래했다. 하기야 연주 중에 그렇게 움직이려면 위험부담이 따를 것 같기는 하다.
합창단에는 전공자로 보이는 젊은이들 외에 전공하지 않은 동네사람들도 꽤 들어가 있다. 고음악에서 전공자 아닌 사람들이 ?효과를 내는 경우도 많으니, 여기도 그런 효과적인 비전공자들이 있을 지 모르겠다. 한편 악보에서 절대 눈 못 떼는 사람들 이번에도 꼭 있다. 나이드신 분들보고 마냥 뭐라 할 수도 없겠지만 이 곡은 거의 외워도 시원찮을 텐데. 어쨌거나 꽤 자주 연주를 해야 하는 단체니까, 다들 상당히 많은 공을 들이는 사람들이라 짐작할 수 있다.
기악진 역시 원전악기와 현대악기의 절충형이다. 역시 해마다 원전악기 비율이 조금씩 늘어 간다는 느낌이다. 이런 데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날 가장 눈에 띄었을 악기는 역시 테오르보. 무지 커다란 기타처럼 생긴 악기다. 대형 류트의 일종이지만 아치류트하고 조금 다르다는데, 그 차이까지는 모르겠다. (다른 연주에서는 등장하는 악기 종류와 개수도 상당히 다르다. 이런 류트 종류를 몇 개씩 쓴다든지 하기도 하고.) 그리고 포지티브 오르간을 가운데, 그 옆에 하프시코드를 90도 돌려서 배치하고는, 이곳 하프시코드 전공 Charlotte Mattax 교수가 곡에 따라 몸을 돌려 가며 그 중 하나를 연주했다. 리코더도 등장해서 특유의 예쁜 음색을 자랑했다. 트럼펫은 현대악기였는데, 그 음색이 고음악을 위해서는 이질적으로 들리기는 했으나 함께 즐길 만 했다. 그러나 현대 더블베이스를 현대 방식처럼 연주한 것은 전체 소리를 너무 두껍고 텁텁하게 만들어 버렸다. 바이올린에 대해서는 확실히 모르겠는데 원전연주의 향기가 많이 났다. 두 바이올리니스트의 활기있고 섬세한 다이내믹이 아주 듣기 좋았다.
이날 저녁기도 연주를 막 마친 모습.
이렇게 여러 면에서 혼합된 형태의 "절충형" 출연진이 만들어 내는 음악, 당연히 어떤 부분은 굉장히 좋고 어떤 부분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사실 아무리 전문가라도 이런 걸 무리없이 연주할 만한 팀이 얼마나 될까. 많은 성부가 복잡하게 짜여 있고, 파트별로 당김음처럼 예기치 않은 타이밍에 치고 나와야 될 데가 부지기수. 거기다 장식은 딴 데서는 구경도 못할 정도로 많고... 이 단체가 나름대로 지난해 바흐 b단조 미사, 그 전 해 헨델 메시아 등 대곡을 꽤 잘 연주했었지만, 아마 그보다 이 곡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있게 제 때 나오지 못해서 느려지거나 어기적거리는 경우도 있었고, 앞에 말한 것처럼 음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음악 자체가 워낙 아름다웠고, 놀라우리만치 좋은 노래와 악기 움직임도 많이 나왔으며, 그들의 정성이 또한 아름다웠다. 덕택에 거의 두 시간의 음악회 내내 아주 즐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나기 어려운 귀한 기회였다. 연주하기는 엄청나게 어려운데 관객들의 귀에는 생소한 작품이니, 쉽게 공연할 엄두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 전체에서도 아직 전곡을 연주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 이번 10월 말에 명동성당에서 한국초연이 있을 예정이라 한다. 그런 곡을 이런 작은 동네에 앉아서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이 연주회를 계기로 해서, 오랫동안 잘 듣지 않던 것을 이제 여러 레코딩을 빌려 가며 즐겨 듣게 되었다. 몬테베르디의 음악과 친해지며 모르던 즐거움을 얻었으니 더욱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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