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연히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한국 가톨릭계의
대표적인 작곡가 한분의 작품을 더이상 미사전례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처음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슨 파문(破門)이 일어났는지 걱정이
앞섰는데, 다행히 그러한 문제는 아니고, 성가의 저작권 문제로
인해 기존 성가집이 법원에 의해 판매금지되었기 때문이란다.
파문이 아니긴 하지만 여전히 파문(波紋)이 상당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는듯 하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이러한 비가역변화의 사
태까지 온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왜 이러한 문제가 일어났을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이상적으로 보면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음악으로 봉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또 지극히 은혜로운 일
이 되겠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살다보니 노동에 대한 댓가
나 지적 재산권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일 수
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미국의 경우, 성가집에 저작권을 일
일히 표시하고 또 성가의 일부를 발췌할 경우에도 저작권 문제를
명확히 한다. 성가대의 특송을 준비할 경우에도, 악보를 복사하
는 것은 도둑행위로 간주하는 의식이 만연해 있어, 필요한 수만
큼 출판사에 미리 주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당에서 활동하는 음악가의 경우에도 일반 직장에는 못 미치지만
시급으로 따져서 고율의 페이첵이 발행되며 봉사보다는 전문 직업
으로 간주하는 분위기이다. 그럼에도 일부 매스컴에서는 오랜기간의
숙련을 거쳐서 터득한 기술 (예를 들어 사지를 총 동원하는 오르가
니스트)이 그에 걸맞는 보수를 받지 못해서 일부 의사나 변호사
등으로 전직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내 주변에
도 명문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를 목격하였
다.
개인적으로 아마추어 음악가라 음악을 통해 생계를 걱정하지는 않
지만, 어쩌다 특별히 음악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받아서 직장까지
조퇴하며 왔건만,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받아들이
는 분위기가 조성될 경우, 의뢰자를 볼때마다 "본전"을 떠올리는
속물이 되곤 한다. 아마도 내눈에 보이지 않는 들보가 많아서 인
가보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가톨릭 작곡가중 하나인 팔레스트리나
(1525?-1594)를 볼때, 비록 그가 "암사슴의 마른 입이 시냇물을
갈급하듯이 내 영혼이 당신을 갈급한다"는 지극히 청아한 모텟
(Sicut Cerbus)으로 많은 이들의 영혼에 파문을 일으켰지만, 한
편으로는 재산때문에 성직을 포기한 인간적인 한계를 드러내기
도 했다.
또한 작품의 말미에 SDG (Soli Deo Gloria;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를 붙이며 신심을 표했던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경우에도
장례식이 적어져 수입이 줄어든다며 좋은 날씨에 불만을 가진
많은 식솔을 책임진 가장이기도 했다.
얼마전 이승을 하직한 법정스님은 평소 무소유의 정신을 주창하
며 이제 마지막 남은 저작권까지도 완전히 포기하여 세상에 귀
감이 되셨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분이 더 인정받고 존경받
는 이유는 범인들이 그렇게 따라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무소유가 그렇게 힘들고 범인에게는 표리부동하게 만드는 것이
라면 차라리 그것을 어느정도 인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있을것이다. 석좌교수의 직함앞에
패트론의 이름이 붙듯이, 저명한 작곡가에게도 다시 시대를 윤
회하여 패트론의 이름이 붙으면 어떨까? 이는 작곡가와 패트론
상호간에 유익이 되는 Win-Win 시스템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튼 이번 사태가 좋은 쪽으로 해결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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