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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34: 원죄(388~406항​)

229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8-24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34. 원죄(「가톨릭 교회 교리서」 388~406항)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원죄에서 해방된다

 

 

전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독을 지닌 무서운 존재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척박한 사막이 아닌 곳에서 평범한 동물들과 어울리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짐을 싸서 개구리들과 살기 위해 습지로 내려왔습니다.

 

습지에 사는 동물들은 전갈이 자신들을 공격하러 온 줄 알고 겁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말 자신의 공격본성을 죽이고 개구리처럼 온유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개구리들도 조금씩 그를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개구리들이 소풍을 가게 되었습니다. 소풍을 가던 중 개울을 건너야 할 때가 왔습니다. 다른 개구리들은 노래를 부르며 개울을 건넜습니다. 그러나 전갈은 수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전갈은 머뭇거리다가 마지막 남은 개구리에게 “네가 나를 등에 태우고 이 개울을 좀 건너 줄래?”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개구리는 “그러면 네가 독침으로 나를 찔러서 죽일 거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전갈은 “바보야, 그러면 나도 물에 빠져 죽잖아”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너기 시작하였습니다. 전갈은 개구리 등 위에서 깨달았습니다. 

 

‘아, 결국 나는 개구리가 될 수 없구나!’

 

그는 자신의 본성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여 개구리를 독침으로 찔러 죽이고 자신도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개구리가 사는 곳에서 함께 살고 싶은데 자신이 전갈로 태어났다면 그렇게 태어난 것 자체가 ‘장애’가 됩니다. 그리고 전갈이 아무리 노력해봐야 개구리가 사는 곳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고 싶어도 태어날 때부터 갖는 ‘원죄’ 때문에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구원에 장애가 됩니다. 이것을 ‘원죄’라 합니다. 원죄는 “‘범한’ 죄가 아니라 ‘짊어진’ 죄이며, 행위가 아니라 상태입니다.”(404항)

 

우리가 원죄 교리를 접할 때,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가 그 후손들에게 전해진다고 배웁니다.(396~401항 참조) 원죄가 아담과 하와로부터 이어지는 이유는 그들이 인간의 첫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원죄는 ‘태어남’과 연관됩니다.

 

태어날 때 모든 동물은 각자의 ‘본성’을 가집니다. 개구리는 개구리의 본성이 있고 사람은 사람의 본성이 있으며 하느님은 하느님의 본성이 있습니다. 이 본성은 태어날 때 부모에 의해 정해집니다. 부모가 누구라고 믿느냐에 따라 그 부모의 본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늑대에게 자랐고 늑대를 자신의 부모라 믿는다면 그 인간은 늑대의 본성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네 발로 걷고 늑대의 울음소리를 낼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인간들 속에서 살 수 없는 원죄를 지닌 상태입니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태어났기에 ‘인간’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원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나의 부모님이 하느님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3)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위로부터”는 “하늘로부터”, 혹은 “하느님으로부터”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새로 태어나서 하느님을 진정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면 원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늑대에게 자란 인간이 자신의 부모가 인간이었음을 안다면 이제 늑대의 습성을 버리고 인간처럼 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인간도 자신의 참 부모가 하느님임을 믿게 되면 새로 태어나 원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어떤 누구도 자신을 하느님의 자녀라고 고백하지 못하면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새로 태어남, 즉 ‘세례’가 원죄를 없애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405 참조) 원죄 때문에 쫓겨난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살려면 하느님을 진정한 마음으로 “아빠, 아버지!”라 불러야 합니다.

 

[가톨릭신문, 2019년 8월 25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 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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