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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성사 : 영혼의 설거지(?)

85839 김영식 [mic2885] 스크랩 2015-09-23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유대인들이 인류사에 이바지한 공적을 둘로 꼽는데,

 하나는 (당시의 노예를 포함한) 노동자들에게 하루 쉬게,

오늘날 와서는 ‘주 5일 근무’까지 확보해 가는 ‘안식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교가 전수받은 ‘죄(罪)’ 의식이란다.

어쩌다 인생에 부스럼 내는 동티나 영혼에 낀 땟국물이 아니라

죄란 전 인류를 몰살시킬 만큼 중하고(노아 홍수),

 죄를 용서받으려면 하느님의 외아들이 십자가에 매다셔야 할 만큼 엄하다는 깨달음이다.

 예수님도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피를 흘리는”(마태 26,28) 것으로 이해하셨다.

그리스도교는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는”(루카 1,77) 종교이고,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으로 정체가 드러나고,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사도 10,43)이 복음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가장 큰 은덕은

‘죄를 용서받은 기쁨’이리라.

막달라 마리아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루카 7,47)는 말씀을 주님께 들었다.

아마도 우리가 죄가 무엇인지 도무지 실감 못하는 까닭은

적게 죄짓고 적게 용서받고 그래서 적게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위대한 성인들은 신앙의 성숙을 ‘죄의 대한 감수성’에서 본다.

 내가 낙태나 살상이나 사법살인을 저지르거나 무죄한 사람들의 죽음에 눈감는 순간,

 피살자의 죽음보다 먼저 내 영혼이 하느님 앞에 파멸한다는 사실을 신앙인은 안다.

 이번에 ‘휴전선 지뢰!’ 소동이 일자 한바탕 전쟁을 치르자고 떠들어댄 늙은이들에 비해서, 첫

영성체 준비 고백성사에서 “신부님, 저 밥 먹었습니다.

북한 어린이들 빼빼마른 사진을 보고서도 밥을 먹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어린이의 신앙이 성숙해 있음을 우리는 안다.

또 “물과 토양과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은 우리 자신을 거스르는 범죄요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악입니다!”(찬미받으소서 8항)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알아듣기까지

우리의 ‘사회적 죄의식’이 성장해야 함도 교회의 가르침이다.

대림절과 사순절 일년에 단 두 번 ‘판공성사’를 보러 고백실에 들어가도

 “미사참례를 궐한 죄와 그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밖에 생각이 안 나고,

내 구원의 핵심이 되는 고백성사가 동티나 피하고 땟국이나 씻어내는

‘영혼의 설거지’로 그치는 것은 ‘죄’가 무엇인지 우리가 여전히 모르기 때문 아닐까?

 

 성염 요한 보스코 前 주 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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