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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참례와 고해성사의 사목지침(미사 참례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83769 김현 [kimhh1478] 스크랩 2015-01-26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
- 주교회의 2014년 춘계 정기총회 승인 -

주일 미사 참례와 고해성사 의무에 대한 사목적 지침

1) 주일 미사 참례 의무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74조 4항에서는
“미사나 공소 예절에도 참례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그 대신에 묵주기도, 성경 봉독, 선행 등으로 그 의무를
대신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와 사목자들이 이 조항에서 말하는
‘부득이한 경우’와 주일 미사 참례 의무를 대신하는
> 방법들에 대한 많은 질문이 있었고, 이번 교구별
토론을 통해 이에 대한 논의를 심화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본 주교회의는 다음과 같이
이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먼저, ‘부득이한 경우’란 ‘직업상 또는 신체적
환경적 이유로 주일 미사에 일시적이건 지속적이건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위 조항에서 주일 미사 참례 의무를 대신하는 것으로
‘묵주기도’는 5단을 바치는 것으로 합니다.‘성경 봉독’은
그 주일 미사의 독서와 복음 봉독을 의미합니다.

‘선행’은 희생과 봉사활동 등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주일 미사 참례 의무를
대신할 경우 고해성사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부득이하게 주일 미사를 참례하지 못한
신자들에게는 평일 미사 참례를 적극 권장합니다.
물론 주일 미사 참례는 신자로서의 최선의 의무이기에
이 부득이한 경우를 임의로 확대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본당 주임 신부는 현 지침의 내용, 부득이한
경우의 해석 및 범위에 대한 교육을 반드시,
그리고 지속적으로 실시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일의 성찬 모임에
참여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할 수 없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삶에 온전히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신자가 확신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찬례는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의 완전한 실현입니다.
그리고 이 성찬례를 특히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바로
공동체 전체의 주일 모임인 것입니다(「주님의 날」, 81항).


2) 고해성사 의무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90조 2항은 “부활 판공성사를
부득이한 사정으로 위의 시기에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 때나
다른 때에라도 받아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도 전 교구 차원의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본 주교회의는 다음과 같이 이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부활 판공성사를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이나 일 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받았다면
판공성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단지 무거운 의무로만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고해성사를
받음으로써 영적 유익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 교회의 특별한 관행인
판공성사 제도가 그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고해성사의 형식화를 초래하고, 냉담 교우를 분류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함입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 안에서 기존의 판공성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전환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3) 고해성사 활성화를 위한 사목적 제안

미사 전 아주 짧은 시간에 성사를 집전하는
현재의 고해성사 관행은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본 주교회의는 고해성사 집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을 권고합니다.

첫째, 본당에서 지속적으로 고해성사의 올바른
의미에 대한 재교육을 실시하여야 합니다.

둘째, 주일 미사 참례에 대한 앞선 논의들을 공지합니다.

셋째, 부활 판공성사는 일 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받으면 판공성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됨을 공지합니다.

넷째, 시간에 쫓겨서 형식적인 고해성사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주일 미사 후나 주간의 특정한 날을 지정하여 좀 더
여유롭게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다섯째, 한 달에 한 번 정도 참회예절과 함께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섯째, 면담식 고해성사를 원하는 신자들을
위한 장소를 배려해야 합니다.
일곱째, 지구, 대리구, 교구에 상설고해소를
마련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합니다.

다른 성사 집전에서도 그러하지만, 특히 고해성사에서
사제의 태도는 신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고해소에서 사제는 신자들에게 격려와 따뜻한
마음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아주 적게 배려되는 고해성사 시간, 형식적인
훈화와 일사천리로 외우는 사죄경, 꾸짖거나
무안을 주는 태도에서 신자들은 죄 사함과
하느님의 구원 은총을 체감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사제의 쇄신이 필요합니다. 고해성사를 위한
최대한의 시간적 장소적 배려와 정성을 깃들인
고해성사의 준비와 집전이 무엇보다 절실합니다.

지난 3년 동안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와 각 교구 단위로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어 왔고,
그 결실을 위와 같이 제시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아버지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개방성을 보여 주는 하나의 구체적인
표시가 바로 모든 성당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하느님을 찾고자
성당을 찾아왔을 때 차갑게 닫혀 있는 문을 마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닫혀 있지 말아야 할 문들은 또 있습니다.

누구나 어떻게든 교회 생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고, 성사들의 문도
어떠한 이유로든 닫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그 자체가 ‘문’인 세례성사가 그러합니다.

성찬례는 성사 생활의 충만함이지만 완전한 이들을
위한 보상이 아니라 나약한 이들을 위한 영약이며 양식입니다.
이러한 확신은 우리가 신중하고도 담대하게 숙고하도록
부름 받고 있는 사목적 귀결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자주 은총의 촉진자보다는 은총의 세리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저마다 어려움을
안고 찾아오는 모든 이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아버지의 집입니다.”(「복음의 기쁨」, 47항).

교회가 이러한 자비로운 아버지의 집이 되고,
그 참된 개방성을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표지가 바로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요한 복음서는 성체성사 제정의 심오한 뜻을 밝히는 가운데
세족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요한13,1-20).

이것은 예수님께서 참으로 친교와 봉사의 스승이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바오로 사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분열되어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고 말합니다(1코린 11,27; 27-34),

또한 참된 죄의 용서는 부활하신 주님의 선물입니다.
주간 첫날 저녁에, 유다인들이 무서워 문을 잠그고 떨고 있던
제자들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 평화와 죄의
용서를 선포하십니다(요한 20,19-23). 우리는 주님께 받은
이 귀하디 귀한 선물, 인간의 언어로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이 선물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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