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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나(2.16)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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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율리아나 (Juliana)
성인 기본정보
축일 2월 16일
신분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니코메디아(Nicomedia)
활동연도 +305년

  •    소아시아 니코메디아 출신의 성녀 율리아나는 소녀였을 때 아버지 아프리카누스(Africanus)에 의해 이교도 청년 에빌라수스(Evilasus)와 결혼할 것을 강요당했다. 하지만 성녀 율리아나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로 인해 아버지로부터 모진 매를 맞았고, 원한을 품고 있던 에빌라수스가 그 마을의 집정관으로 부임하면서 체포되어 갖은 형벌을 받았다. 결국 그녀는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청혼자에 의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성녀 율리아나는 아버지와 청혼자의 뜻대로 결혼하도록 설득하려는 악마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Martyrologium Romanum)은 그녀가 니코메디아에서 순교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Napoli)에서 서쪽으로 약 25km 떨어진 쿠마(Cuma)라는 마을에서 순교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그녀는 니코메디아의 성녀 율리아나 또는 쿠마의 성녀 율리아나로 불린다. 성녀 율리아나가 순교한 후 한 귀족 신자에 의해 그녀의 유해가 나폴리 인근 포추올리(Pozzuoli)로 옮겨졌다가, 568년 롬바르드족으로부터 유해를 지키기 위해 쿠마로 다시 옮겨졌다. 그녀의 수난기는 중세 시대에 널리 알려졌고, 특별히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에 의해 나폴리에 성녀를 기리는 성역이 조성되었다. 1207년 성녀의 유해가 장엄한 예식을 통해 나폴리로 이장되면서 나폴리 왕국 전체와 이탈리아와 에스파냐, 프랑스 등 여러 지역으로 성녀 율리아나에 대한 공경이 확산하였다.

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율리아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853-68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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