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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나 팔코니에리(6.19)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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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 (Juliana Falconieri)
성인 기본정보
축일 6월 19일
신분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지역
활동연도 1270?-1341년

  •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는 1270년경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열심한 신자인 부모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카리시모(Carissimo)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는 마리아의 종 수도회(Ordo Servorum Mariae, O.S.M.)의 일곱 명의 창설자 중 한 명인 성 알렉시오 팔코니에리(Alexius Falconieri, 2월 17일) 숙부와 어머니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녀가 어려서 아버지가 사망했기 때문에 집안사람들은 그녀를 유력한 집안의 남자와 결혼시키려 했다. 하지만 일찍이 숙부의 영향으로 봉헌 생활을 꿈꿔온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는 결혼을 완강히 거부했다. 14살 때부터 그녀는 나중에 마리아의 종 수도회의 총장이 된 성 필립보 베니시오(Philippus Benitius, 8월 22일)에게 영적 지도와 교육을 받으며 참회와 기도 생활을 충실히 실천해갔다.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는 자신의 영적 지도자였던 성 필립보 베니시오의 권유에 따라 사촌인 요안나와 성 필립보 베니시오의 누이와 함께 마리아의 종 수도회의 제3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여 년간 집에 머물며 재속 수도자처럼 기도와 자선 활동에 전념하였다. 어머니가 선종한 후에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는 동료들과 함께 병자들을 돌보고 소녀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 위해 새로운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1304년에 교황 베네딕토 11세(Benedictus XI)는 그녀가 설립한 마리아의 종 수도회 제3회 공동체를 정식 수녀회로 허가하였다.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는 처음에는 사양하였으나 결국 초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거리와 집, 병원에서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았던 그들은 마리아의 종 수도회와 비슷한 수도복을 입었는데, 그로 인해 ‘망토 수녀회’(Mantellate Sisters)라는 별명을 얻었다.

       오랫동안 엄격한 단식과 기도, 자선에 충실했던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는 선종하기 전에 한동안은 극심한 위염으로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영성체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한 신부가 그녀의 간절한 청을 받고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가슴 위에 성체를 올려놓아 주었는데, 그 순간 성체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고 1341년 6월 19일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가 선종한 후, 그녀의 가슴에 성체에 있던 표지가 새겨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는 가슴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 형상(IHS)이 빛나고 있는 모습으로 종종 표현된다. 1678년 교황 인노첸시오 11세(Innocentius XI)는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에게 행해지던 공경을 정식으로 허가했고, 1737년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는 그녀를 성인품에 올렸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6월 19일 목록에서 피렌체에서 마리아의 종 수도회 제3회 수도회를 설립한 동정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에 대해 기록하였다. 그녀는 성녀 율리아나 팔코네리아(Juliana Falconeria)로도 불린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 동정',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01-302쪽.
  • 페르디난트 홀뵉 저, 이숙희 역, 성체의 삶을 위한 성체와 성인들 - '율리아나 팔코네리 성녀', 서울(성요셉출판사), 2000년, 146-148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율리아나 팔코네리아',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8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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